이문일 논설위원

 

“인천 앞바다의 어여쁜 눈썹, 월미도가 반세기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분단과 단절의 바다 黃海가 평화와 교류의 바다로 현신하는 찰나, 월미도가 눈부신 자태로 돌아왔다.… 아, 우리 모두 월미도의 귀환을 축복하자!… 인천 시민과 평화의 기획에 기꺼이 참여할 세계 시민께 바치노라.” - 2001년 10월15일 최원식

인하대(국문과)에 재직중이던 최 교수가 월미공원귀환기념비에 적은 글이다. 지금도 기념비는 월미산 정상 광장에 우뚝 서 있다. 한국전쟁 무렵부터 수십년간 군부대가 일반인 출입을 통제한 월미산. 인천시는 2001년부터 월미공원을 잘 가꿔 둘레길(2.3㎞)을 비롯한 산책로 등을 새로 만들었다. 산책로는 햇빛을 가릴 정도로 울창한 숲터널을 이뤄 찾는 이들을 반긴다.

월미도는 영욕의 역사와 함께했다. 개항기 강화도를 침략해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 함대 사령관 로즈는 당시 월미도를 발견했다며 이름을 '로즈 섬'이라 짓기도 했다. 월미도 일대는 개항 이후 청일·러일전쟁을 거치며 일본의 병참기지로 바뀌었고, 해방 후엔 미국 해양경비대가 주둔하며 일반인 출입을 막았다. 한국전쟁 땐 인천상륙작전으로 집중포격을 받아 초토화했다. 그 뒤 50여년간 군부대가 시민 출입을 통제했다.

이처럼 인천엔 아직도 군부대 '철조망'에 가려진 장소가 많다. 특히 군(軍)에서 해안가 상당부분을 막아 시민들은 먼발치에서 바다를 둘러보아야 한다. 바다를 '중심'으로 한 인천에 왜 이렇게 '금단'의 조치가 많은가. 군에선 상황을 제시하며 그럴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지만, 이젠 그를 면밀히 살펴 곳곳의 해제를 검토해야 마땅하다. 14일부터 시민들에게 부분 개방한 부평 캠프마켓도 80여년 동안 일반인 출입을 막았던 곳이다.

문학산도 마찬가지다. 소싯적 '소풍'을 가던 곳으로 유명하던 문학산은 1965년부터 군부대 주둔으로 일반인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줄기찬 시민들의 요구로 2015년 10월15일 개방됐는데, 낮시간대로 한정했다. 본디 문학산은 인천의 고대 왕국이었던 미추홀의 진산(眞山)이다. 인천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지만, 시민들은 오랫동안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정상엔 예전 봉화대를 재현한 상징물이 있다. 봉화대가 존재할 땐 마치 배꼽을 드러내듯 보여 '배꼽산'으로 불렸다. 시계가 좋으면, 팔미도와 무의도 등 인천 앞바다 섬들과 멀리 강화 마니산과 서울 북한산까지 보인다.

인천시는 국방부와 협약을 맺어 오는 17일부터 문학산 정상부 개방시간을 오전·오후 3시간씩 앞당기고 늦추기로 했다.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겨울철 오전 5시∼오후 8시)다. 문학산 정상에서 해돋이와 해넘이, 인천의 야경을 볼 수 있도록 개방 시간을 늘려달라는 시민 요청에 따라 국방부와 합의했다. 시는 개방 시간 확대 축하 전야제를 16일 오후 7시부터 산 정상에서 펼칠 예정이다. 아무쪼록 군부대와 합의해 시민들이 마음놓고 즐길 수 있는 곳을 더 많이 챙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