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화성시에서 버려졌습니다”

화성 태생 김씨, 가족과 일찍 단절
돌봐주던 친척 돌아가신 뒤 거리에
동사무소 직원에 도움 요청하자
왜·어디로 이동하는지 설명없이
수원 지원센터에 홀로 두고 떠나

관계자 “지역간 넘기는 경향 강해”
화성시 “돌볼시설 없어 이동 죄송”
▲ 화성시 한 시골 마을에서 수원시 노숙인 지원시설로 쫓겨난 김씨가 컵라면과 음료수가 든 봉지를 들고 수원다시서기노숙인센터에서 마련한 임시 숙소로 향하고 있다./사진=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제 고향은 화성시입니다. 50년 가까이 살았던 그 동네 공무원한테 도와 달라 했더니, 자동차로 수원에 내려놓고 사라졌네요.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김명성(가명·40대)씨가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떨궜다. 여기저기 해진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온몸에 질병으로 인한 상처가 가득한 그는 '우리 사회가 버린 노숙인'이었다.

▶관련기사 6면

화성시의 한 시골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는 김씨는 지난 7월 수원시로 쫓겨났다. 노숙인인 그가 시 공무원에게 “도와 달라”고 요청했더니, 차에 태워 수원에다 떨궜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다.

가족과 일찌감치 단절된 김씨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화성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친척의 농장 사료배달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돌봐주던 친척이 돌아가시는 등 불운이 겹치면서 결국 거리를 떠도는 처지가 됐다. 내성적인 성격과 병이 자주 나는 예민한 피부 탓에 취업도 쉽지 않았다.

노숙인 생활이 장기적으로 접어든 어느 날, 동네 슈퍼 사장이 시에 찾아갈 것을 권했다. 김씨는 이를 받아들여 동사무소 직원을 만나 사정을 말했다.

잠시 후 직원 한 명이 김씨를 차량으로 안내했다. 이내 어둡고 낯선 길을 달리고 달렸다. 김씨에게 목적지가 어디인지, 왜 이동하는 것인지 등을 설명하는 사람은 없었다.

A씨는 차 안에서 대략 “바쁘다”, “볼일이 있다”고 말하는 직원들 간 대화만 엿들을 수 있었다. 약 1시간 만에 차가 멈춰선 곳은 수원시의 노숙인 지원 시설이었다.

김씨는 그때까지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공무원은 어리둥절해 하는 김씨를 내려두고 홀연히 떠났다.

노숙인 김씨에게 1차적으로 도움 요청을 받은 지자체는 화성시다. 화성에서 지원이 이뤄졌어야 했고, 불가능하더라도 수원으로 이동한다는 내용의 설명을 김씨에게 당연히 해야 했다. 또 절차도 엉터리였다. 노숙인은 경찰이 '피구호자(被救護者)'로 정의할 정도로 응급한 상황이나 위험에 노출된 대상이다. 지자체·경찰은 이에 노숙인 이송 시 정식 인수·인계를 밟는다.

인수·인계는 노숙인 발견시각 및 장소, 인적사항 등 2차 담당자가 즉시 업무를 실행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내용을 전달(문서·구두)하게 된다. 안전하게 넘긴다는 책임성 부여 의미도 있다.

만약 해당 과정이 생략되면 이송 중간에 노숙인이 실종된다 해도 아무도 모르고, 책임소재도 불분명한 상황이 벌어진다. 도움이 특히 시급한 긴급 대상자의 조사 시간도 낭비된다.

예를 들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노숙인의 경우, 가족관계를 알아야 대처가 가능하며 주소지 불명의 노숙인은 발견 장소를 알아야 '행려환자 등록' 등 의료지원이 가능하다.

노숙인이 자신이 머물던 지자체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수원으로 넘어오거나, 업무 협조도 없이 버려지듯이 하는 사례는 왕왕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 관계자는 “말이 노숙인이지 결국 지역주민인데, 지자체가 자체 해결하지 않고 다른 지자체로 넘기려는 경향이 강하고, 또 인수인계 없이 몰래 둘 때도 있다”며 “지역에는 대상자 욕구와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처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노숙인 지원은 국가에서 법으로 정하고 있다.

지난 9월 용기를 내 인터뷰에 응한 김씨는 “(센터로) 걸어 올라갈 때 차에 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따라올 줄 알았는데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겁이 많은 성격이라 너무 무서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화성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면서 “초기 상담과 인수인계를 철저히 해야 한다. 28개 읍·면·동을 상대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화성시가 지역이 넓지만, 아직 거리 노숙인까지 돌볼 시설은 없다.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해 매우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김현우·최인규 기자 kimhw@incheonilbo.com

 



관련기사
[노숙인 고려장] 1-1. 어느 30대 여성 노숙인의 ‘비참한 죽음’ “우리 사회가 그분을 감싸 안았다면, 쓸쓸히 죽음을 맞을 일은 없었을 겁니다.”수원시에서 노숙인을 돕는 활동가들은 2019년 9월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 여성 노숙인이 세상을 떠난 시기다. 그는 사회적 복지가 절실한 계층이었지만, 길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끝내 비극을 맞았다.사연은 이렇다. 노숙인 이지연(32·가명)씨는 2016년 12월 수원에서 경찰에 발견, 처음으로 노숙인 지원제도와 마주쳤다. 남편의 외도와 무관심으로 이혼했으며 부모와도 사이가 안 좋아 남남처럼 지내던 그였다.2017년 1월부터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 [노숙인 고려장] 3. 경기도 노숙인 대책 '제자리 걸음' 경기도 지자체들의 '노숙인 지원' 대책이 8년째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대다수 지자체가 '시설 입소'라는 1차원적 방식에 머물면서 오히려 노숙인은 늘었다.지역사회 책임이 불분명한 관련법을 손질해야 한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지적이 일고 있다. #제자리 지원체계…개선 노력도 없어15일 경기도에 따르면 도의 노숙인 지원정책은 '노숙인 발굴→ 전문 상담→ 보호→ 자립지원→ 정상적 사회복귀'로 이어지는 5단계 실행을 추구한다.그러나 실제 실행이 가능한 지자체는 손에 꼽는다. 현재 경기도 31개 시·군 중 [노숙인 고려장] 4. 지자체 예산 32억 VS 480만원 경기도 지자체들의 노숙인 관련 예산이 기준도, 효과도 없이 사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은 지자체마다 수백만 원부터 수십억 원까지 천차만별이고, 대부분 시설 운영에만 치중돼있다. #기준도, 용도도 '들쭉날쭉'인천일보가 경기도 지자체 노숙인 예산을 전수 조사한 결과, 예산을 자체적으로 편성(국·도비 포함)한 곳은 수원·가평군·동두천·성남·의정부 등 12곳이다. 총액은 127억6162만원이다.그러나 고루 분포되지 않고 상위권 3개 지자체에 몰린 비중이 62%에 달한다. 수원시가 32억8107만원으로 가장 많다. 이어 가 [노숙인 고려장] 5. 범죄에 취약…경찰 치안 '사각' 경기도내 노숙인을 표적으로 한 각종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노숙인이 범죄에 휘말리면서 각종 보호제도의 수혜 대상 자격이 박탈돼 더욱 곤궁한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경기경찰은 노숙인 범죄예방과 관련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있다. #노숙인 노린 범죄 횡행19일 노숙인 보호단체인 '수원 다시서기'에 따르면 상담 및 지원에 들어간 노숙인 10명 중 3명꼴로 상당수가 범죄피해를 겪었다.7급 공무원 출신 송모(56)씨는 친구의 연대보증을 잘못 섰다가 노숙인이 됐다. 그러던 지난 7월 용기를 내 수원노숙인종합지원센터의 문을 두 [노숙인 고려장] 6. '주거 우선'과 '일자리 연계' 새 삶 찾는다 경기도내 각 지자체가 노숙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지만, 사회에 복귀하는 사례가 손꼽히는 것은 그들을 '사회 구성원'이 아닌 '지원대상'으로만 여기는 풍토와 체계적이지 못한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최근 5년 노숙인이 늘어나는 추세에 '주거 정책'에 방점을 둔 수원시의 성공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인간 생활의 기본인 '주거'를 해소하면서 동시에 자립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수원시에 앞서 해외에서도 탈(脫) 노숙에 효과를 거둔 정책이다.이모(55)씨는 2년 전까지 수원역 노숙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