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대 보건상담복지학과 교수•한국노년학회 회장

우리 인간은 모두 날 때부터 노인이 되기로 운명지어진 존재들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학식이 높아도, 아무리 외모가 출중해도, 아무리 체력이 강해도 그 운명만큼은 바꿀 도리가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어느 누구도 노인으로 늙어갈 우리의 운명을 썩 달가워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떻게든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고자 발버둥을 쳐본다. 때로는 의학의 힘을 빌려도 보고, 때로는 진한 화장이나 화려한 의상에 기대어 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제도나 정책의 힘에 의지해 보기도 하고, 기술이나 제품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그러나 노화로부터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나이든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일까?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친절한 복희씨>라는 단편을 출간한 기념으로 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인터뷰에서 나이든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학 시절에는 학교 앞 찻집 대학생들 사이에 앉아 추억을 더듬는 아줌마들을 보면서 '저 나이에 무슨 재미가 있을까' 생각했단다. 그 때는 나이에 '흔'자가 들어가는 순간 여자로서의 인생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본인이 일흔이 넘어 보니, 그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그 나이에서만 알 수 있는 인생의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나 역시 그랬다. 지금은 노년학자가 되어 있지만, 대학생 때 나는 딱 50까지만 살다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50플러스 인생에는 아무런 즐거움도 없는 것 같았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고, 서른을 넘어 쉰살이 되기 전까지는 내 자리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그리고 쉰살을 앞둔 나는 궁금했다. 한때는 끝난 인생일 거라고 생각했던 나이 50이 되면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정말 그 나이가 되면 삶의 의미도 재미도 없는 그날이 그날 같은 매일이 이어지는 건 아닐까?

마흔 고개에 들어설 무렵 50대가 된 선배에게 소감이 어떤지 물었다. 그랬더니 호탕한 웃음과 함께 돌아온 대답은 “40대도 좋았지만, 50이 되니 훨씬 더 좋아. 자유롭고 편안해”라는 것이었다. 이제 5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나의 소감도 비슷하다.

50대가 되니 윗분들 눈치 보느라 하지 못했던 일들을 과감히 할 수 있고, 미안해서 혹은 고마워서 내키지 않지만 마지못해 떠안아야 했던 일들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딱 50이 되던 해에 13년된 연구모임을 정식 학회로 창립하였고, 거절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던 몇몇 위원회와 모임에서도 과감히 떠났다. 학술적 가치보다는 실적 때문에 억지로 쓰던 어려운 용어로 가득한 딱딱한 논문보다는 노년학자로서의 진정한 역할을 고민하며 일반 대중들과 사회에 인구고령화와 노년을 좀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이야기를 쓰거나 강의하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집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이 먹는 일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각자 나름의 '나이 먹는 즐거움'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이가 든다고 모두 사회에서 낙오되고 쓸모없는 노인이 되어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참맛을 아는 노년으로 무르익어갈 수도 있다.

요즘 카페에 인기 메뉴로 새롭게 등장한 음료가 있는데, 바로 청귤에이드다. 한 음료 회사에서 청귤을 넣은 탄산음료를 출시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그런데 청귤은 새로운 귤 품종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귤을 아직 익지 않은 상태에서 딴 것이 바로 청귤이다. 청귤을 얇게 저며 켜켜이 설탕을 넣어 숙성시키면 향긋한 청귤청이 된다. 그 청귤청으로 청귤에이드나 청귤차 같은 음료를 만들고 냉국수나 샐러드에 넣어 맛과 향을 더한다. 그런데 청귤은 덜 익은 과일이다 보니 스스로 단맛을 내지는 못하기 때문에 설탕을 듬뿍 넣어야 한다. 반면 익은 귤은 그 자체로도 즙이 풍부하고 향이 좋으며 맛도 달다. 특히 나무에서 막 따낸 귤보다는 수확한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가 지나면 맛이 더 달고 깊어진다.

사람도 그렇다. 풋귤 같은 청년기보다는 익어가는 중년, 그리고 잘 익어 숙성된 노년기에 깊고 단 인생의 참맛이 더해지는 것이다. 가을이 무르익듯 우리도 노인으로 익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