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우리말 사용 장려 취지
지자체 의무 도입에도 외래어 남발
기존 직원 겸직 전문성 하락 이유
관련 사업 추진·조례제정 드물어

 

“비말 감염 위험. 경기도내 지자체가 코로나19를 조심해야 한다면서 시민들에게 자주 쓴 말이다. 비말(飛沫)은 한자로, 시민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다. 날아 흩어지거나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라는 뜻으로, 쉽게 풀어쓰면 '침방울을 조심하자'다. 지자체가 편한 우리말을 고민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전문가가 한 말이다. 공공기관에서부터 우리말을 제대로 쓰자는 취지로 도입한 '국어책임관'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 도를 비롯해 지자체마다 의무적으로 책임관을 두고 있으나, 외래어가 남발한다.

▶관련기사 3·6·14면

7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7년 개정된 국어기본법에 따라 경기도, 31개 시·군은 국어책임관을 의무적으로 두고 있다. 지방에서부터 국어 발전과 보전에 앞장서자는 취지다.

국어책임관은 기관의 정책이나 홍보자료를 시민에게 알기 쉬운 용어, 즉 한글로 순화하거나 정확한 문장과 맞춤법 점검, 국어사용 환경 개선 시책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

공공기관에서 유일한 '한글 지킴이'인 셈이다.

하지만 있으나 마나 한 직책이 된 지 오래다. 국어전문가를 새로 뽑아 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닌, 기존 직원에게 일을 겸직시키면서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어기본법은 해당 기관의 홍보나 국어 담당 부서장 또는 이에 준하는 직위를 국어책임관으로 임명하게 돼 있다.

이렇다 보니 본연 업무를 두고 하루 수만자씩 쏟아지는 문서나 보도자료를 세심하게 살피기 역부족하다.

업무 협조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자리다. 문화체육 관련된 부서 직원을 책임관으로 임명했으나, 보도자료와 공문서 작성은 각각 홍보팀, 총무과이기에 관여조차 힘들다.

여주시 국어책임관은 “국어전문가가 아닌데, 우리말인지 외래어인지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며 “홍보와 총무 부서가 아니기에 이들 부서의 업무를 침범해 바로잡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한글과 관련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지자체도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관계자는 “매년 국어책임관의 실적을 보고받지만, 사업을 추진하는 곳이 많기에 내용을 전달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고 말했다. 지자체는 1년 주기로 경기도에 책임관의 실적 등을 보고해야 한다.

지자체의 외래어 사용은 상징물과 홍보물만 봐도 얼마나 무분별하게 쓰이는지 알 수 있다.

▲휴먼시티(human city) 수원 ▲The Way to Better Living 길이 열리는 화성시 ▲두드림(DO DREAM) 동두천 ▲FULL LIFE GIMPO(김포) ▲시민과 함께하는 스마트 행복 도시 안양 등이다. 모두 10개 시군 홈페이지를 장식했다.

공공기관 내부에서도 외래어 사용은 부지기수다. 문체부 조사(2018년)에서 경기지역은 공문서에서 573건의 외래어를 사용했다. B2BC, G-FAIR, RE&Up처럼 시민이 쉽게 알지 못하는 단어도 자주 등장한다.

국어책임관의 순기능이 시급한 대목이다. 한글을 지키기 위한 '국어진흥조례'를 제정한 지역도 9곳밖에 없다. 성남·수원·안산·안양·이천·파주·포천·연천·화성 등이다.

이 조례는 5년마다 국어 발전 시행 계획을 세우도록 규정하면서 한글 보호와 발전 방안이 마련될 것으로 보였으나, 제정한 곳조차 겉핥기식 운영에 그치고 있다.

화성시 관계자는 “우리말을 바로 쓰기 위한 중요 사업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국어책임관을 의무로 둘 수 있게 됐지만, 한글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경고를 하거나 하는 강제할 수 없다”며 “이 추세라면 한글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이 될까 봐 정말로 안타깝다. 지자체가 의지를 갖고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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