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인천에는 인천의 돈이 돌지 않는다. 인천의 은행에 쌓인 자금이 인천의 자금수요에 매칭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수익성과 건전성 추구에 목을 매는 제1금융권 대형 영리은행들은 신용등급이 낮거나 담보능력이 없고 재무제표상의 수치가 좋지 않은 자금수요자들의 대출신청에는 냉정하게 등을 돌린다. 인천의 제1금융권 자금의 100% 이상이 인천 밖으로 투융자되고 있는 것은 매우 슬픈 사실이다. 지역밀착형 금융, 그러니까 지역의 금융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관계지향형 자금공급을 사명으로 설정하고 있는 신협, 새마을금고, 저축은행과 같은 상호금융기관 역시 대출행태는 매한가지다.

문제는 지역의 은행들이 금융약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뿐만 아니다. 대출의 경기에 대한 변동도 아주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즉 경기가 좋을 때는 그에 맞춰 자금을 많이 풀었다가도 경기가 조금이라도 냉각되면 바로 대출한 자금을 회수한다는 의미다. 사실 지역경제의 안정화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그 지역의 투자와 소비가 경기에 무관하게 일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지역 대출패턴의 경기변동성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안정적인 투자와 소비를 담보해내지 못해 지역경제에 있어 심각한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부산의 부산은행과 같이 지역의 자금수요를 중시하며 지역 착근적인 자금공급을 지향하는 이른바 '인내심 있는 자본(patient capital)'이 인천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사회혁신에 기여하는 주체들의 자금수요에 대응하는 '사회적금융' 역시 마찬가지다. 인천에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비즈니스를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사회적경제조직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수익성보다는 사회성 및 공공성에 중점을 두는 사회적경제조직은 본질적으로 금융약자일 수밖에 없다. 아예 재무제표를 작성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조직들도 많고 담보능력 등 자본을 끌어모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한 조직들이 태반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역사회 문제들을 해결하며 사회혁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활동이 영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들의 투자가 지속가능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결국 사회적경제조직의 투자는 이들에 대한 안정적인 자금공급에 의해 담보될 수 있다. 아쉽지만 인천에서는 이러한 사회적금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의 '지역공공은행'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지역 금융시장의 배제 문제와 보다 사회적이고 공공적인 프로젝트에 자금이 공급되지 않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가 나서서 공공적인 금융 루트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들 때문이다. 미국 중북부 지역인 노스다코타주는 이미 100년 전에 미국 최초로 지역공공은행을 설립했다. 주민투표를 거쳐 주 예산 200만달러로 자본금을 마련했다. 은행 경영 전반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대출심사 등과 같은 핵심 프로세스를 주민이 직접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하면서, 100년 동안 한결같이 주민을 위한 공공사업과 금융약자들의 자금수요에 적극 대응해왔다. 지역 내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저리융자에서부터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 사업을 통해 지역의 에너지전환을 꾀하는 협동조합들에 대한 무배당투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금융지원을 펼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노스다코타주은행은 지역의 문화예술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대출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 문화예술 관련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대출심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즉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은행이다. 이렇듯 공공성이 매우 강한 은행임에도 불구하고, 100년을 버티면서 은행업 자체로도 시장에서 번영을 구가했다. 2018년에는 자산 규모 70억달러로 성장했고 1억5900만달러 흑자를 냈다. 이 때문인지, 작년에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지역공공은행 설립을 허용하는 주법을 만들었다. 독일도 지자체가 100% 출자한 지역공공은행이 지역경제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역공공은행 붐 이면에는 금융시장을 매개로 하는 지역 자금 수급매칭에는 한계가 있다는 전 세계의 공통적 사실이 존재한다. 인천의 양상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공공, 즉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 인천은 지역화폐 인천e음에 관한 정책 과정에서 '지역순환형 경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참에, 인천의 자금공급이 인천의 자금수요에 맞물릴 수 있도록 하는, 지자체가 설립하고 시민이 기획•관리•통제하는 지역공공은행을 제안해본다. 최근 화두에 오르고 있는 지역 차원의 '그린뉴딜' 역시 이 은행으로 대응해낼 수 있다. '공공적이고 시민적인' 은행이야말로 우리 사회 금융민주화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