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산업화와 고도 성장기 시절, 설 추석 명절은 '귀성(歸省)'의 동의어였다. 도시로 떠나갔던 아들 딸들이 카운트다운 하듯 기다려 고향으로 향했다. 막상 고향 집에 들어서서는 인사도 제대로 않은 채 동네 주막이나 구멍가게로 줄달음한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또래 친구들간에 술자리가 벌어지는 곳이다. 밤늦도록 고향으로 돌아오는 친구들까지 기다리느라 새벽까지 이어진다. 이튿날 못 일어나 차례에도 불참하는 불효 자손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명절 중의 명절이 팔월 열나흩날 밤, 섣달 그믐날 밤이라고들 했다.

▶올해 팔월 열나흩날 밤은 나훈아와 함께 했다. 방송을 통해서는 15년만의 귀환이라 했다. 젊어서 그를 알았던 세대들은 마치 야구장에서처럼 곁에 술상을 끼고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기다렸다. 시작부터 뭉클했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고향역'은 흰머리 휘날리며 고향역으로 달려 나올 어머니들을 떠올리게 했다.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에서는, 저마다 '가을이 다가도록 소식도 없는/서울로 떠나간 사람'이 바로 자신인 듯 느꼈을 것이다. '물레방아 도는데'의 노래 시에는 슬픈 사연이 배어있다. 일제 강점기, 학병으로 끌려가던 동경 유학생이 고향 마을과 작별하는 장면이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번 보고/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 보며' 떠나갔을 식민지 청년의 슬픈 눈이 떠올라 다시 술잔을 끌어당겼다.

▶연휴 내내 들끓었다. '나훈아 신드롬'이라 할 만했다. 공연 중간 중간의 멘트들은 엉뚱한 시비까지 불러일으켰다. “살다 살다 별 꼬라지를 다 봅니다.”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 없다.” 정치권 한쪽에서 '현 정부 비판'이라 하자 다른 한쪽에선 '오버 말라'고 했다. 당사자는 말이 없으니 아전인수격 해석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KBS가 이것 저것 눈치 안보고 정말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되면 좋겠다.”는 흘려들을 수 없는 멘트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 KBS는 많이 망가졌다. 있지도 않은 발언을 마치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불어댔던 'KBS 뉴스9'는 날이 새자마자 '오보'를 자인했다. 채널을 돌리다 혹시라도 KBS에 멎을까 봐 조심조심한다는 이들도 많다. 라디오도 마찬가지다. 운전을 하다 국민 편가르기에 몰두하는 KBS 안들으려 아예 '국군의 방송(국방FM)'을 듣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무슨 토크쇼라는 프로는 언론의 '비판'을 다시 비판하는 해괴한 모습이다. '수신료 폐지' 주장에 대해서는 '언론 탄압'이라 강변한다. 말이 되는 얘긴가. 한 때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까지는 아니어도 좋다. 부디 나훈아의 고언을 새겨들으라. 채널9 근처에도 안가면서 꼬박꼬박 생돈을 내야하는 사람들의 충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