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섭 정치2부장

# 1990년 10월3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서독과 동독이 하나가 되었다. 지난 3일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주도 포츠담시에서는 독일 통일 3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포츠담시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1945년 7월 미국과 영국, 소련 등 연합국 정상들이 일본과 식민지 처리 문제를 의논한 회담이 열린 곳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재확인한 포츠담 선언의 역사적 장소다.

코로나19로 인해 생각보다 조용하게 치러졌지만 오랫동안 동병상련을 느껴오던 우리로서는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올해 행사의 구호는 'Deutschland ist eins: vieles'(독일은 하나가 됐고 그러면서 다양한 독일이 됐다). 하나의 독일, 그러면서 다양한 독일의 현재 모습을 잘 대변해주는 듯하다.

통일 당시 서독의 43% 수준에 불과했던 동독 경제는 30년 만에 80%까지 올라왔다. 동서독 간 지역 격차와 경제력 차이는 크게 극복된 모습이다. 여전히 분단국가로 남아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가 50배로 커진 우리의 모습과는 극명히 대비된다. 물론 구 동독 주민의 60% 정도는 아직도 자신이 2등 국민인 것 같다는 차별인식을 갖고 있지만 통일 이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과거와 같은 차별의식이나 격차를 느끼지 않는다는 대답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범구 주독일 한국대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아직도 분단상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고, 여전히 전쟁의 위기가 가시지 않은 한반도에서 바라보는 독일 통일 30년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면서 동방정책을 추진했고 동서독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던 빌리 브란트의 대동독 평화정책을 관통하는 구호는 한가지였다고 강조한다.

'Wandel durch Annaeherung'(접근을 통한 변화). 상호 꾸준히 접근을 시도하면서 서로에게 변호를 줘왔던 것이 통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독일 통일의 교훈이 우리에게 좋은 영감을 주고 있다.

#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의 위치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전쟁이 벌써 일주일을 넘기고 있다. 소련 시절 같은 연방국가였던 이들은 소련 해체 후 독립해 조지아(예전 그루지야)와 함께 코카서스 3개국으로 불리고 있다. 노아가 방주에서 처음 내디딘 땅이라는 아르메니아는 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나라다.

오스만투르크(현재 터키) 시절 러시아와 친하다는 이유로 150만명이 학살당하고 전 세계 600만명의 디아스포라 비극을 간직한 아르메니아.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건립된 제노사이드(대학살) 추모관의 불꽃이 오늘도 불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또다시 전쟁의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 이웃한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국가로 터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노골적으로 터키와의 협공을 벌이고 있는 정도다.

이들은 한국에도 평화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2일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 대한 의견 표명을 요청합니다'의 제언이 올라와 있다. 개전 3일 만에 200명이 넘는 젊은이와 민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전쟁 중지와 평화에 대한 한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들은 또한 #stop Erdogan 해시테그 운동을 통해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있다. 2003년 에르도안이 집권한 이래 2011년 리비아와 시리아, 2014년 이라크, 2020년 그리스 및 아르메니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그를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2018년 아르메니아 취재에서 만난 현지 언론인 아르미네 함바르줌옌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아픈 역사를 간직한 아르메니아와 한국은 닮은 점이 많은 나라다. 전쟁중단과 평화를 위해 한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 지난달 22일 인천 연평도 앞바다에서 북한에 의해 우리나라 공무원이 피격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현재도 시신을 찾기 위한 수색작업이 2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사건 초기 고인에 대한 추모는 뒤로하고 월북 논란과 전쟁 불사론으로 가득했던 정치권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례적인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빠른 사과로 최고조로 올랐던 남북 긴장 상황은 조금 진정됐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에는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뒤따라야 하는 법이다. 북한은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가 요구한 진실규명을 위한 공동조사와 책임자 처벌, 시신 수습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할 것이다.

독일과 아르메니아는 우리와 닮은 점이 많다. 분단의 아픔을 공유한 독일, 주변 강대국에 의해 전쟁과 학살의 기억을 가진 아르메니아. 통일을 통해 유럽의 중심국가로 거듭나고 있는 독일과 주변 강대국 이익에 휘둘려 또 다시 전쟁의 길로 들어선 아르메니아 중 우리가 가야할 길은 너무나 명확하다. 평화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