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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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江華)는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그만큼 각종 문화재를 비롯해 유물·유적 등이 야외 곳곳에 존재하면서 찾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강화 중심에 우뚝 서 있는 마니산은 특별하다. 국조(國祖) 단군이 하늘을 열고 제사를 지내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이념으로 삼은 반만년 우리 역사의 상징이다. 올해 개천절(10월3일)은 단기 4353년. 강화 정족산(鼎足山)엔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쌓았다는 삼랑산성(三郞山城)이 보인다. 고대에 흙으로 만든 토성을 삼국시대에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고 전해진다. 고려 때는 개성에서 강화로 천도(遷都)를 하며 대몽항쟁의 주무대로 이름을 알렸다. 근대 들어선 서양세력과 처음으로 전투를 벌인 격전지였다. 지금은 북한과 접경지역으로서, 분단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전등사(傳燈寺)는 강화를 대표하는 고찰이다. 정족산이 아늑하게 품은 절의 이름은 불교에서 나왔다. '등'은 부처의 가르침을 뜻하는데, '불법을 전하는 사찰'로 해석된다. 기록에 따르면 전등사는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에 의해 381년 '진종사'로 창건됐다. 국내에 불교가 들어온 지 9년 만의 일이다. 이후 고려 말인 1282년 왕비 정화궁주가 절에 옥등을 시주하면서 '전등사'로 불렀다고 한다.

전등사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온다. 들어보자. 날아갈 듯 하늘을 향한 대웅전 추녀 네 귀퉁이엔 이상한 조각이 눈길을 끈다. 벌거벗은 여인의 형상(나부상)이다. 성스러운 법당에 왠 나부상? 여기엔 도편수와 주모의 애정 행각이 드러난다. 조선시대 광해군 때 화재로 전등사 건물이 소실되면서 재건공사를 하게 됐다.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사찰인 만큼 이 공사엔 솜씨 좋은 목수들이 참여했다. 그 중 공사를 총지휘하던 도편수가 인근 주막 주모와 사랑에 빠졌다. 우직한 도편수는 품삯을 받는 대로 주모에게 맡기고, 일이 끝나면 함께 살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갈 무렵, 주모가 돈을 들고 사라졌다. 그러자 도편수는 마치 복수하듯 대웅전 처마 아래에 주모를 닮은 나부상을 조각해 넣었다는 얘기다. 벌거벗은 채 평생 무거운 지붕을 떠받들라는 원망이었을까, 아니면 늘 부처님 말씀을 들으면서 쌓인 업을 씻어내라는 뜻이었을까?

전등사가 10월10∼18일 경내에서 '제20회 삼랑성 문화축제'를 연다. '기억, 기록'이란 주제의 행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비대면으로 치른다. 전등사 측은 축제를 개최한 지 20년을 맞아 대대적인 준비를 했다가 코로나로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개막일 오후 7시엔 '전등사 가을음악회'를 마련했는데, 현장에 입장할 수 없는 대신 유튜브 생중계나 주차장 '드라이브 인' 콘서트를 즐길 수 있다. 이밖에 인천 출신 독립운동가 최선화의 넋을 기리는 영산대재를 비롯해 현대작가전, 북한 사찰 사진전 등 다채로운 전시회가 열린다. 오랜 세월을 지켜온 전등사가 코로나에 지친 시민들에게 '위안의 선물'을 안겨주는 듯해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