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죽음 … 인간 존엄은 어디에
가족이 시신 인수 거부하거나
연고자 못 찾은 1000여구 유해

수원시연화장 지하 캐비닛 보관
진공팩에 이름 등 정보 적혀
돌보미연대 “참혹함 느낀다”
시 “5년 보관 후 산골처리 예정”
▲ 수원시 연화장 추모의 집 지하 1층 무연고자 유해 보관장소. 사진의 진공팩 하나하나에는 무연고자의 유해가 담겨 있다.

 

수원시가 가족 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연고자를 찾지 못한 1000여 구의 무연고자 유해를 수원시연화장 지하 공간에 진공팩에 담아 보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죽어서도 버림받은 존재가 되는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을 위해서라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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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둔 27일 수원시 연화장은 성묘를 위해 찾은 조문객으로 붐볐다.

연화장 한편 자연장지에는 홀로 생을 마감한 무연고자들의 합동유골처리장과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탑이 서 있다. 바로 옆에는 조지훈 시인의 '민들레꽃'이 비문에 적혀 있다.

조문객들은 손에 제수를 위한 생선포 등을 들고 위령탑 옆에 걸터앉아 고인을 기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 연화장 내 무연고자들의 유해는 일반인들과 달리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무연고자 유해는 추모의 집 지하 한 공간에 진공팩에 담겨 보관 중이다.

추모의 집 지하 1층에 있는 이곳은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푯말과 함께 문이 굳게 잠겨 있다. 바로 옆 유골함이 안치된 공간과 달리 이곳에는 회사 사무실이나 보관서고 등에서 볼 수 있는 철제 캐비닛 40~50여 개가 줄지어 서 있다.

캐비닛을 열자 켜켜이 쌓여 있는 진공팩 20여 개가 눈에 들어왔다. 진공팩 하나하나에는 무연고자의 유해가 담겨 있다. 진공팩 겉에 쓰인 이름과 사망 일자, 일련번호만이 고인이 생전에 누구였는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일부 진공팩에는 이마저도 없어 발견된 날짜만 적혀 있기도 했다.

수원시는 2016년 그간 보관해온 무연고자의 유해를 합동유골처리장에서 산골(유해를 뿌리는 일)한 이후 발생한 무연고자 유해를 이 장소에 보관해왔다.

올해 4월까지 약 1000여명의 무연고자 유해가 이곳에 왔다.

무연고자는 과거 가족이나 주소, 신분, 직업 등을 알 수 없어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을 뜻했다. 그러나 최근 연고자가 있더라도 장례식을 치를 비용이 없거나 가족관계 단절에 따라 시신 인수를 포기하면서 무연고자로 처리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무연고자의 장례는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이 맡는다. 시장 등은 무연고자 시신에 대해 5년간 매장하거나 화장해 봉안해야 하며, 기간이 종료된 후에는 장사시설 내 유골을 뿌리거나 자연장해야 한다.

수원시는 무연고자 '봉안'의 방법으로 진공팩에 담아 캐비닛에 보관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돌보미연대 손철균 팀장은 “진공팩에 고인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에 참혹함을 느낀다. 그곳에는 어떠한 존엄도 고인에 대한 위로도 없다”며 “단지 연고자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유해가 진공팩에 담길 수 있다면 그 누가 사회구성원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돌보미연대는 안산지역 등에서 발생하는 무연고자의 시신을 인도받아 장례 및 안치를 대신하고 있는 시민단체다.

수원시 관계자는 “무연고자는 별도의 안치료를 내는 것도 아니고, 찾는 사람도 없다. 여기에 현재 연화장 내 일반인들의 안치 공간도 부족한 상황이다”며 “이곳에서 5년간 보관한 후 산골 처리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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