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도 모두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 이 지상에서의 한철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이토록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고통과 시련도 알고 보면 결국 자신이 만든 일의 결과가 아닐까. 내가 움켜쥐고 있던 주먹을 펴면, 내가 닫았던 마음의 빗장을 열면, 내가 하는 생각의 생각들이 모두 아름다움만 생각한다면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내 아는 사람에게/상추잎 같은 편지를”쓸 수도 있으리라.

/시인 주병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