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재 인천자주평화연대추진위원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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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헤엄월북이더니, 이번엔 해상월북인가? 서해 해상에서 우리 어선들의 조업을 지도하던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근무 중 개인적으로 몰래 빠져나와 구명조끼와 부유물에 의지해 월북했다. 북측 해상에서 귀순 심문과정 중 사살된 것을 두고 연일 언론이 관련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보수야당과 언론들은 정부를 몰아붙이는 호재를 만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왜 구출하지 못 했느냐고 타박이다. 전쟁이라도 불사하자는 위험천만한 발언이다. 실체적 진실 규명과 재발 방지대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다.

지난 2013년 9월, 임진강을 통해 월북하려던 민간인을 남측 초병들이 기총 사격을 해서 사살한 사건에 비추어봐도 그렇다. 당시 군 당국은 “남측 민간인은 돌아오라는 초병의 경고를 무시하고 부표를 잡고 월경을 시도했기에, 사살한 것은 '적절한 조치'로 판단된다”라고 발표했다. 북이 사살하면 문제고 남이 사살하면 적절한 조치라고 보는 시각이야말로 기울어진 시각이다.

사실 이번 사건에 대해 국민적 여론이 들끓게 된 이유는 초기 국방부의 섣부른 발표에 기인한 바가 크다. 지난 22일 국방부는 당시 그 자리에서 직접 목격한 것처럼 “우리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렀음을 확인하였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분노가 촉발된 지점은 북이 귀순 의사를 표명한 민간인을 사살하고 시신을 해상에서 화장했다고 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북 노동당 통일전선부 전문을 보면 북의 항변에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전문에서 북은 “귀측(남측) 군부가 무슨 증거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불법 침입자 단속과 단속 과정 해명에 대한 요구도 없이 일방적인 억측으로 '만행', '응분의 대가' 등과 같은 불경스럽고 대결적 색채가 깊은 표현들을 골라 쓰는지 커다란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은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번진 이후 방역의 핵심을 국경 봉쇄와 차단으로 삼았다. 지난 8월부터는 국경을 넘는 사람이나 동물은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부도 대화 채널이 끊겨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사건 인지 초기에, 북과 직접적인 접촉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이 크다. 만시지탄이지만 지난 6월, 북이 최고 존엄마저 능멸하는 대북전단이 계속 살포되는 것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폐기한 4개의 남북 간 통신선 중 하나만이라도 살아 있었다면 이번 사태는 막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6월16일 개성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대화가 단절된 남북관계가 이번 사건으로 대결국면으로 치닫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차에 북 노동당 통일전선부 전문으로 냉정을 찾아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속하고도 이례적으로 남녘 동포들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한 사과 표명은, 들끓는 분위기를 가라앉혀주고 있다. 뉴욕타임즈, CNN 등 외신들마저 전례가 없다고 할 정도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다. 이번 안타까운 사건을 계기로 남북이 다시 대화에 나설 수 있다.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됐나 싶었는데, 지난 9월8일과 12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에 친서가 오고 갔다고 청와대는 공개했다. 일각에선 친서 교환을 트집잡지만 친서 교환통로와 직통선은 명백히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다시금 냉각상태에 들어간 한반도 평화체제의 시작을 위해 '종전선언'을 하자고 제안했다. 단절된 남북대화와 관계를 복원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남과 북이 우선 자주적인 노력을 적극적으로 재개하는 것만이 이번과 같은, 아니 이보다 더 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