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권 인하대 명예교수

한국조세연구원에서 최근 내놓은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에 대해 정치권과 학계에서 비판과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도 도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이런 공방이 벌어지나 궁금하여 논문을 읽어 보았다. 사실 학자나 전문가들이 다른 사람의 연구논문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논문은 다분히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느껴, 주요 내용을 몇 가지 짚어본다.

첫째, 논문은 객관적 관점에서 써야 한다. 그런데 이 논문은 처음부터 객관성을 결여했다. 본문 앞부분에 “지역 및 사용업종의 제약으로 인해 동일한 액면가의 현금보다 열등한 지역화폐”라는 표현이 나온다. 왜, 지역화폐를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런 논리라면 한국 원화는 한국에서만 통용되고 달러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니 열등한 화폐인가? 도대체 이런 말도 안되는 논리로 지역화폐가 열등하다고 비하하니 이 연구가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성을 갖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둘째, 지역화폐 발행의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인접지역의 경제적 피해를 대가로 하기 때문에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이런 연구내용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정책목표와 지향점이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소비를 A지역에서 하나 B지역에서 하나 전혀 차이가 없다. 그러나 지역 입장에서는 우리 지역에서 소비와 타 지역에서 소비는 제로-섬 게임이다.

셋째, 조세연 연구에서는 두 지역 모형을 가정해 지역화폐를 발생할 때와 발행하지 않을 때 유발되는 비용과 효과를 분석했다. 그런데 이 연구모형은 말 그대로 아주 단순모형이며, 두 지역의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가정을 전제로 결과를 추론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지역도 동일한 조건을 가진 지역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으며, 지역의 소비활동에는 시간과 교통비용, 근린과 혼잡비용, 지역 특수성과 차별성, 자료와 정보, 소속감와 애향심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는 것을 전혀 무시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넷째, 조세연 연구에서는 지역화폐를 동네마트와 전통시장에서 사용하면 대형마트보다 가격이 비싸고 제품의 다양성이 떨어져 주민 후생감소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소비자 후생지수는 단순히 가격과 상품의 다양성만으로 산출되는 것이 아니다. 후생지수에는 상품구매와 관련된 거리, 시간, 편리성, 다양성, 공정, 신뢰, 공동체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는데 연구자들은 단순히 상품가격과 다양성만 관련 있는 것처럼 내용을 호도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동네마트는 대형매장보다 저급하다는 가정을 바탕에 깔고 있는 아주 편협한 발상의 연구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다섯째, 조세연 연구결과는 지역화폐 사용이 지역경제에 가져오는 승수효과는 무시한 경제분석이다. 경제는 순환하기 때문에 지역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에서 소비하면 승수효과가 발생하여 골목상권이 활성화되고 지역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지역 소상공인 통닭가게에서 100을 구매하면, 통닭가게 주인은 수입 가운데 일부를 지역에서 옷을 사는데 소비하고, 옷가게 주인은 수입 가운데 일부를 빵을 사는 데 소비하며, 빵집 주인 또한 수입 가운데 일부를 골목에서 과일을 사는데 소비해 최초의 100 단위 지역화폐 사용은 지역상품 소비성향에 따라 승수효과를 보인다. 그런데 조세연 연구에서는 이런 원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지역화폐 발행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주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분석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필자는 조세연 연구결과에 대한 정치권 공방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 연구결과에 대한 비판을 전문가집단 힘으로 찍어 눌러 지적 인프라를 위협하고 전문성의 소중함을 망각한 일이라는 비난은 이해할 수 없다. 연구결과는 비판과 토론을 통해 공론화되어야 한다. 전문가 연구결과는 비판 너머에 있는 성역도 아니고, 이번처럼 논란이 되는 연구는 당연히 더욱 심도 있는 토론과 공론화를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연구결과가 공론화되지 않아 얼마나 많은 헛발질과 예산을 낭비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황모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그랬고, 경인운하의 경제적 타당성 연구도 그랬으며, 4대강 사업 연구도 결국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는가? 이번 조세연 연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계기로 논란 있는 연구에 대한 전문가집단의 보다 활기 있는 토론과 공론화 문화가 자리잡아 한국 학계의 지적 인프라와 전문성이 향상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