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만한 여성의 육체에서 대자연을 마주하다
풍만한 여성의 육체에서 대자연을 마주하다
  • 박혜림
  • 승인 2020.09.23 17:31
  • 수정 2020.09.23 19:07
  • 2020.09.24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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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수 조각가


53년간 모성 넘치는 여체 500점 조각
1992년 작 '솔바람 … ' 교과서 실리기도
돌·브론즈 등 전통재료 한계 뛰어 넘어
한지 등 변화로 신진작가에 귀감

내년 2월14일까지 양평서 '회고전'
▲ 고정수 작가가 자신의 작품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고정수 작 '바라본다 먼 하늘을 본다'.
▲ 고정수 작 '바라본다 먼 하늘을 본다'.

 

8등신 늘씬한 미인상은 온데간데 없고 펑퍼짐한 뱃살을 내놓은 풍만한 여인상이 어딘지 모르게 친숙하다. 50여년간 작품 활동을 해온 고정수(73) 작가는 후덕한 한국적 여인상을 테마로 모성 에너지가 넘치는 건강한 여체를 조각해왔다. 콜롬비아에 풍만한 여인상을 그리는 남미의 피카소 페르난도 보테로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조각가 고정수가 있다.

고정수 작가는 지난 15일부터 내년 2월14일까지 양평 뮤직포레스트 전시관에서 '자연과 더불어'를 주제로 회고전을 갖는다.

위대한 자연 앞에 맥없이 무너지는 인간에 대한 고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인간의 교만을 여체 조각 속에 담아낸 작품을 선보인다. 조각작 12점, 사진작 12점 등 24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인간은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죠.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 파괴가 가져온 자연의 보복은 다양한 환경문제와 재앙들을 가져왔어요. 결코 인간은 자연을 거스를 수 없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은 지구에 잠시 세 들어 살다 떠나는 존재니까요.”

 

▲ 고정수 작 '지는 해를 바라보며'.
▲ 고정수 작 '지는 해를 바라보며'.

 

▲ 고정수 작 '기다리지 않아도 돼'.
▲ 고정수 작 '기다리지 않아도 돼'.

 

고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오브제로 삼아왔던 건강하고 풍만한 여체 작품을 자연과 닮아 있는 존재로 부각시키고 사진 작품을 병치시켜 보다 입체적으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를 테면 여체 조각을 세우고 뒷모습이 담긴 사진작을 함께 전시하는 식이다. 특히 회전판 위로 조각상을 설치해 360도 여러 방향에서 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작품을 볼 때 단순히 정면 모습 뿐 아니라 앞과 뒤, 옆태까지도 입체적으로 감상이 가능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작품은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고 작가는 올해 데뷔 53주년을 맞이했다. 500여 점에 달하는 그의 작품들은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국회의사당, KBS, 대한한공, 신라호텔, 서울시립미술관, 인천 정석빌딩 등 수많은 곳에 소장돼 있다. 1992년 작품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는 미술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인천일보 사옥에도 있다. 인천 중구 신흥동 일대에서 나고 자란 고 작가는 인천일보와 연이 닿은 1994년 작품 '등대지기'를 인천일보 사옥에 세웠다.

“작품 등대지기는 등대를 배경으로 웅크리고 있는 여체상입니다. 배경없는 여체만을 조각하던 저의 기존 작품과 달리 등대를 조각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등대가 인천 바다를 연상케 하는 효과도 있지만 어부에게 바른 길잡이 역할을 하는 밝은 등대처럼 우리 사회를 밝히는 등대 역할을 인천일보가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돌과 브론즈 등 전통 재료를 주로 사용해 작업하는 고정수 작가는 세라믹, 한지, 테라코타, 알미늄 래핑 등 재료의 영역을 넓히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움과 변화를 시도해 온 고 작가는 많은 청년 작가들과 신진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작가에게 전시는 매우 중요합니다. 공간에 제약을 둘 필요는 없지요. 대단한 갤러리에서만 전시를 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레스토랑이든 카페든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골인 지점을 알 수 없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입니다. 곁눈질하며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어요. 앞만 보고 우직히 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 일기 쓰듯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나가는 것이 작가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길입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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