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 집행위원장

남북 평양공동선언 2주년이 되는 올해 9월19일은 참으로 쓸쓸하게 지나갔다. 2년 전 그날의 약속이 이행됐다면 올해는 남과 북이 한자리에서 성대한 기념식을 베풀고 한 걸음 진전된 성과를 온겨레가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됐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남북관계는 다시 한숨을 자아내는 걱정거리로 전락했다. 지난 2년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누가 우리민족의 평화로운 미래를 가로막고 있는지. 두말할 것 없이 미국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맞잡은 손을 치켜올리면서 약속한 일들이 하나도 이행되지 못하고 모두 원점으로 돌아갔다. 미국의 간섭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19 평양공동선언 2주년을 맞아 SNS에 올린 글에서 “그 감격은 생생하건만 시계가 멈췄다”면서 “합의가 빠르게 이행되지 못한 것은 대내외적 제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언급은 여기까지다. '대내외적 제약'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이 나라 대통령의 팔자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제약은 바로 미국이 가하는 것이다. 대외적인 제약은 미국의 직접적인 간섭이요, 대내적인 제약은 미국을 추종하는 국내 세력들의 방해다.

대통령도 분명히 인식하듯 우리민족의 미래를 가리키는 시계는 멈췄다. 그러나 시계가 고장났다고 해서 시간이 기다려 주는 것은 아니다. 고장난 시계를 바라보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미래로 전진할 것인가. 우리는 더 이상 가지 않는 시계만 바라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소리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군사 분야에서 구체적이고 실천적 합의를 이뤘고 이 합의가 판문점 비무장화와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로 이어졌으며 남북 간 무력충돌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시계는 비록 멈춰섰지만 평화에 대한 우리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간섭을 돌파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남북관계를 풀어 나가는 데 있어서 대통령이 미국의 눈치를 지나치게 본다면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의 우유부단함을 한탄하면서 과감성도 모험 의지도 없다며 혀를 차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는 대통령 혼자서 풀어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와 정치권을 비롯하여 한반도에 가해지는 미국의 압력은 생각보다 엄청나며, 특히 청와대에 대한 감시와 압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는 한반도의 주인으로서 평화를 향한 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인천비상시국회의와 인천자주평화연대추진위원회가 주최하는 평양공동선언 2주년 기념 시낭송회와 음악회가 9월19일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열렸는데 이는 한반도 평화의 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하고 싶은 시민들의 안타까운 몸짓이었다. 평화와 통일의 염원이 우리 안에서 잠들지 않는 한 민족의 미래를 향한 시간은 쉼 없이 흐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