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 삶의 근간 '고을사직단' 고증은 전국 최초
▲ 고증의 단서가 된 고지도(왼쪽은 지승, 오른쪽은 해동지도) 속 부평 사직단.
▲ 고증의 단서가 된 고지도(왼쪽은 지승, 오른쪽은 해동지도) 속 부평 사직단. /사진제공=경인교대 기전문화연구소

 

▲ 부평 사직단의 경관 구성 모식도.
▲ 부평 사직단의 경관 구성 모식도. /사진제공=경인교대 기전문화연구소

 

경인교육대학교 기전문화연구소가 조선시대 부평사직단의 위치와 경관을 새롭게 고증했다.

국가 사직단과는 구별되는 고을 사직단의 전체적 경관 형태를 고증한 것은 전국에서 최초인 것으로 보인다.

경인교대 기전문화연구소는 인천 계양구 계산로22번길 일대가 옛 부평사직단이 있던 자리라고 21일 밝혔다.

그동안 부평사직단 위치는 인천 서구 공촌동 경명대로 북쪽이라고 알려졌었다.

사직단은 토지 신인 '사(社)'와 곡식 신인 '직(稷)'을 위한 제사 공간이다. 백성의 풍요와 안녕을 신에게 빌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국가 사직단과는 별개로 전국의 300여 개 모든 지방에 고을 사직단을 조성한 바 있다.

인천에도 강화, 옹진 등 4개 고을 사직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이런 고을 사직단에 대한 연구 조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사적 제121호 국가 사직단만 알려진 상태다.

경인교대 기전문화연구소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지형도와 측량기법 등을 연구한 결과 새로운 위치를 발견하고 모식도도 구성했다.

전종한 연구소 소장은 “부평 지역이 조선의 도읍인 한성과 지척인 고을이었던 만큼 국가에서 정한 고을 사직단의 표준형에 가까왔을 것으로 추정한다”며 “백성 삶의 근간이었던 고을 사직단의 가치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의 주요 성과는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의 '문화역사지리'에 게재됐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