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공업지대로 수십년 함께 일궜지만 … 지역상생은 외면

지난 14일 아파트, 단독주택, 상가할 거 없이 인천 동구 빈터마다 홍고추가 늘어져 있었다. 요즘 공동주택에서 고추 말리다가는 젊은 사람들 원성 사기 딱 좋다는데, 경인공업지대 중심지인 동구에서 누가 농사를 짓는지 '가을에는 고추 건조'가 당연한 듯,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두산인프라코어 공장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서 고추를 널던 장연순(가명·78)씨는 “다들 여기 오래 살면서 나이들 있고 하니까 이거(고추 건조) 한다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다 할 산업단지는 없어도 인천 동구는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지대다. 두산인프라코어,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유명 제조업체들이 수십년째 둥지를 틀고 있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실태현황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으로 동구 소재 사업체 3514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만 2만7841명이다. 같은 연도 동구 인구(6만6233명)에서 42%에 해당하는 몸집이다.

'제조업 일자리 백화점' 동구라지만 일자리 자족도는 인천 타 자치단체와 비교해 눈에 띌 수준은 아니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하는 '수도권 목적별 통행분포'에 따르면 2017년 1일 평균 동구 주민 출근 통행 3만8779건에서 동구 내로 향한 발길은 1만2072건이다. 동구 직장인 가운데 동구 소재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비율이 31.1%라는 뜻이다. 인천지역 8개 자치단체 일자리 자족도를 보면 중구가 49.5%로 가장 높고 남동구 38.6%, 서구 37.3%, 미추홀구 33.7%, 부평구 32%에 이어 동구(31.1%) 순이다.

동구 전체 일자리 시장에서 절반 이상이 타 지역민에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대기업과 같은 양질 취업자 역시 동구 몫은 얼마 안 될 가능성이 크다.

동구에서 활동하는 공인중개사 A씨는 “몸만 멀쩡하면 큰 기업에서 일할 수 있었던 동구는 1980년대까지나 통했던 얘기다. 좋은 지역 기업들 진입 장벽은 계속 높아졌고 인근 주택 환경은 노동자들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 동구 고액 연봉자들은 송도, 청라국제도시처럼 인천 신도시나 서울, 경기로 빠져나나갔다. 정작 동구 청년들은 지역에서 일자리를 못 찾고 외부로 떠났다. 20·30·40대 인구 유출이 그래서 많지 않나 싶다”고 전했다.

인천 동구 기업들도 지역 친화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경영 보안이라는 이유로 일자리 확대를 위한 정보 공유에 소극적이고, 주변 상권 유지를 위한 상생 고민도 드물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인천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대기업들은 동구 공장 종사자 인원도 경영 보안에 속한다며 지역 단체에 알리기를 꺼릴 지경이다. 한마디로 돌아가는 사정을 외부에서 알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동구 경제를 함께 고민할 민간 기업들이 절실하다”고 귀띔했다.

동구 대기업 노동자 규모는 추측 정도만 가능하다.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종사자 500인 이상 사업장이 동구에는 총 4곳으로, 소속 노동자는 4813명이다. 이 중 인천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그중 동구 주민이 얼마나 되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관련기사 3면

/이주영·김원진·이창욱·이아진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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