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아마티앙상블 대표

작곡가의 작품은 그의 삶을 반영하기 때문에 격동의 삶을 살았던 베토벤 역시 웅장하고 역동적인 곡을 많이 작곡했다. 베토벤의 음악을 떠올리면 '운명' 교향곡의 강렬한 오케스트라 선율, '합창' 교향곡의 합창 멜로디가 가장 먼저 연상된다. '월광' 소나타와 '비창' 소나타와 같이 낭만적인 곡들이 널리 알려진 반면, 그의 가곡들은 다소 생소하다.

가곡이란 사람의 목소리로 가사를 전달하는 것이기에 작곡가의 정신세계와 음악적 특징을 더 잘 엿볼 수 있다. 베토벤의 가곡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다루며, 단순함과 복잡함을 오가는 감정 묘사가 특징이다.

인간은 소통을 위해 말을 만들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 말은 개념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음악 같은 이심전심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음악은 추상적이기에 말과 같은 구체성의 힘을 빌리고 싶어 한다. 음악을 기다리는 말과 말을 사랑하는 음악이 만나서 이루어진 것이 가곡(歌曲)이다.

항상 험악한 표정에 매사에 신경질적이었던 베토벤이었지만, 그의 마음 한편엔 따뜻한 구석이 있었다. 사람 대하는 것에 서툴렀던 베토벤은 서정적인 음악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던 베토벤은 25세 때인 1795년 청춘의 감상적 서정미가 넘치는 가곡 두곡을 작곡한다.

첫 번째 곡 '아델라이데(Adelaide)'는 시인 '마티손'의 시에 영감을 받아 완성한 가곡으로, 사랑하는 연인 아델라이데를 향한 정열이 넘치는 곡이다. 부드러운 선율에 절제된 사랑이 느껴진다. 서정적인 선율이 도저히 베토벤이 작곡했을 거라곤 생각되지 않지만, 베토벤의 다른 가곡들도 이렇다. 베토벤은 내면의 감춰진 따스함을 이렇듯 노래로 나타냈다.

두 번째 곡 '그대를 사랑해(Ich liebe dich)'는 베토벤이 '헤로세'의 시 '부드러운 사랑'에 곡을 붙여서 만든 가곡이다. 소박하고 간결한 선율이다. '신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도록 지켜주실 것'이라는 마지막 가사가 연인들의 애달픈 심정을 대변한다. 특히 도입부분은 가수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에 삽입되어 대중들에게도 그 멜로디가 매우 익숙하다. 학창시절 제2외국어를 독어로 선택한 분들이라면 독어 시간에 외워서 노래를 불렀던 즐거운 추억도 있을 것이다.

단순, 간결하면서 서정적이고 유려한 선율을 가진 짧은 가곡, 피아노 연주와 성악가의 가창으로만 이루어지는 독일가곡은 그 담백한 매력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독일 가곡은 성악가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피아노 연주자의 역량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같은 노래라도 성악가와 연주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Ich liebe dich' 중 가장 좋아하는 성악가를 꼽으라면 테너 프리츠 분델리히(Fritz Wunderlich)를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독일 가곡을 무척 좋아하는데 누군가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절제와 여백의 미가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이탈리아 가곡에 비해 독일 가곡은 확실히 좀 무겁고 담백하다. 독일 가곡은 감정이 절제되어 있어 더 슬프고 더 아련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피아노로만 반주되는 독일 가곡은 오케스트라 또는 다양한 악기의 반주로 연주되는 다른 나라의 가곡과 달리 소리의 여백이 느껴지는 특징이 있다.

우리는 참고 절제하는 게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조금만 절제하고 배려해 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사회가 시끄러워지는 듯하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시기, 가을의 길목에서 아름다운 베토벤의 가곡을 들으며 절제와 여백의 미로 마음을 채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