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헌 인천체육회 미래기획단장

최근 국회에서 체육인의 인권보호를 강조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여야합의에 의해 통과되었다. 고 최숙현 선수의 사망을 계기로 40일만에 속전속결로 처리된 것이다. 그동안에도 국민체육진흥법이 환경 변화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수차례 개정돼 왔었지만 이번에는 제1조(목적)을 개정한 것이어서 체육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아주 큰 의미를 갖는다.

1962년 국가재건위원회 시절 탄생한 현재의 체육진흥법 제1조(목적)은 “국민체육을 진흥하여 국민의 체력을 증진하고, 건전한 정신을 함양하여 명랑한 국민생활을 영위하게 하며, 나아가 체육을 통해 국위선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체육활동의 최종적인 목적이 국위선양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당시엔 스포츠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알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됐던 측면도 있다. 즉 국가홍보의 수단으로서 스포츠의 투자 대비 효과가 컸다고 본 것이다.

1977년 파나마에서 개최된 WBA(세계복싱협회) 타이틀매치에서 도전자 홍수환 선수가 4전5기로 카라스키야를 누르고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였을 때 “엄마 나 참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민국 만세다”라고 했던 선수와 어머니의 통화는 두고두고 화제가 되었다. 또한 1966년 미국 톨레도에서 개최된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광복 후 최초로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한 인천 출신 장창선 선수가 금의환향했을 때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치렀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위선양에 대한 보상으로 주택제공과 취직까지 지시했다고 한다. 국가는 이들을 영웅시했고 각종 매스컴을 통해 스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최초로 금메달을 땄던 양정모 선수 이후엔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 병역특례를 제공하고, 체육연금까지 주게 됐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엘리트체육은 국가 주도로 성장을 해 왔다.

국가의 필요에 의하여 발전해 왔고, 서울에서 열린 88올림픽 이후에는 스포츠강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체육인들은 오로지 금메달을 따는 게 가장 큰 목표가 되었고, 국가는 그들에게 다양한 보상을 해 주었다. 국위선양은 국가에서 체육인들에게 부여한 임무가 된 셈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번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이 시대적 흐름에 맞게 국위선양보다 스포츠 폭력에 대한 예방조치, 체육인의 인권보호 시책에 관한 내용으로 선회한 점에서 매우 잘된 일이다.

구호로만 그치는 스포츠 선진국이 아니라 인권이 보장되고 개인의 성취를 인정하며 구시대적인 메달 경쟁에서 벗어나 진정한 스포츠인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국위선양을 앞세우지 않아도 스스로 꿈을 꾸고 그 꿈을 꾸는 개인은 경쟁력을 키워 나갈 것이다.

최근 들어 세계적인 선수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박지성, 박태환, 손흥민, 김연아, 박인비를 비롯한 수많은 대한민국 스포츠 스타들이 운동을 하는 목적이 국위선양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본인의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과 노력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본인의 명예와 함께 저절로 국위선양을 한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