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수미 화해평화연구소 소장(변호사)

“변호사님. 살기 힘들어 상담전화를 했는데 사투리라 못 알아듣겠다고 상담사가 전화를 끊어버렸어요”라고 말하는데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말씀하시는 북향민 여성분의 목소리는 어둡지 않아 “선생님 속상하진 않으셨어요?” 라고 여쭈니 “그래도 북한말이라고 안하고 사투리라고 해서 괜찮아요”라고 웃으셨다.

지역차별이라는 과제는 매년 대선 때마다 부각되어왔다. 각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지역감정을 사용해왔고 힘없는 국민들은 그 선동에 휘둘리며 서로가 서로에게 손가락질 하고 편 가르기하며 격렬하게 싸웠다. 희미해지는 남한 내 지역차별은 북한을 고향으로 하는 사람에 대한 지역차별로 변형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조금은 성숙한 시민의식의 고양으로 대놓고 지역을 두고 차별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적어도 겉으로는 출신 지역, 나이, 성별 등의 차별이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해하는 행위임을 듣고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향민들에게는 다르다. 여전히 한 마디 하면 “어디에서 왔어요?”를 물어보고, 북향민들이 이야기하면 “북한말 못 알아듣겠다”며 짜증을 낸다.

아마도 그러하기에 상담원이 사투리라 못 알아듣겠다며 전화한 자신의 전화를 무례하게 끊어도, 북한사람이라고 대놓고 무시하진 않았다는 마음에 괜찮다고 스스로를 자위하며 웃었는지 모르겠다.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제주도 등 한국에는 각 지역마다 아름다운 지역 특색의 말들이 존재한다. 북한의 말도 사투리인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투리를 쓴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대화를 거부한다는 것은 아직도 우린 북향민들에게 열려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남한의 자살률은 OECD국가 중 1위이다. 그 중 북향민들의 자살률은 일반 남한사람보다 약 5배가 높다. 왜 북향민들은 정착한 후 극단적 선택을 하는 걸까. 북한과 남한은 너무나도 다르다. 남한에 목숨 걸고 찾아 왔건만 법치주의와 남한 특유의 관료주의가 더해져 어느 것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거기에 “탈북으로 인해 북한에서 낙오자, 변절자 소리를 듣는데 내가 여기서 아무것도 못하면 죽어버려야 한다.”는 자존심도 일조한다. 결국 어디에도 하소연 할 곳이 없다는 그 좌절감이 북향민들을 삶의 막바지로 몰고 가는 것이다.

이제 그만 북향민 탓 하자. 정말 북향민을 사랑한다면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자립을 위한 지원을 해야 한다. 북향민들은 일방적으로 신세 지는 것도 굉장히 싫어하며 자존심도 강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이제 북향민은 이제 뭔가를 베풀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온 동등한 ‘인간’으로 보아야한다. 북향민과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그들의 고향인 북한에 대한 이해 또한 절실하다.

그러므로 우리 지금부터 남북이 다름을 인정하고 북한과 북향민을 공부하며 존중하자. 남북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를 알아가야 서로에 대한 차별 또한 없다. 북향민들에게 남한에 대한 일방적인 동화와 복종만을 강요할 때, 우리의 행위는 같은 민족에게 100여 년 전 일제가 조선에 행한 문화말살정책을 펼치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될 수 있다. 이제는 우리가 달라질 때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