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논설위원

나이든 사람들은 '학교 수위'라는 말에 익숙할 것이다. 학교 입구 경비실에서 출입자를 점검하는 것이 주 업무지만 운동장 등을 관리해 학생들에게는 신경쓰이는 존재였다. 주말이나 공휴일에 학교에 들어가 축구•농구 등을 하려면 수위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시끄럽게 굴면 호통이 떨어졌다. 상당수 학교는 정문과 후문에 각각 수위를 배치했다. 권위주의가 일반화된 시절이라 그런지 깐깐한 수위들이 많아 학생들에게는 확실한 '갑'이었다.

수위의 봉급도 교사 못지않아 10~20년씩 장기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무렵 대부분의 학교에서 수위가 사라졌다. 학교의 개방성이 강조되고, 학교 담장 허물기운동까지 벌어지는 마당에 문턱을 지키는 수위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1년 '배움터지킴이'가 등장됐다. 학교 폭력과 성범죄 등이 문제가 되자 교육부가 도입한 제도로, 2018년 기준으로 전국으로 확대돼 거의 모든 초•중•고교에 상주하고 있다.

배움터지킴이의 업무는 지난날 수위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외부인 출입을 통제•점검하는 것은 물론 교내를 순찰하면서 학교폭력을 감시하고, 등하교 시에는 학교 앞에서 학생 교통안전을 지도해야 한다. 예전에는 그런 거 없었다. 차량이 많지 않았을뿐 아니라, 학생들이 알아서 드나들었다.

게다가 코로나 발생 이후에는 발열 체크와 명부 작성 등의 지원업무도 하고 있다. 마치 머슴처럼 일한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9년간 배움터지킴이로 근무하다 지난 5월 퇴직한 김모(73)씨는 “교장관사 풀 뽑기, 농구대 페인트칠, 교실 에어컨 청소, 택배•등기 관리 등 온갖 일을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배움터지킴이는 자원봉사자 신분이라는 것이 특이하다. 인천지역 524개 초•중•고에는 660명의 배움터지킴이가 활동하고 있지만, 학교와 근로계약을 맺은 사람은 17명에 불과하다. 일부 사립학교가 배움터지킴이를 근로자로 인정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자원봉사자인 것이다.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아 하루 8시간을 일하고도 4만원밖에 받지 못한다.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식비와 교통비도 일당 4만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옛날 수위들이 이를 안다면 코웃음 칠 것이다. '지킴이'이라는 명칭만 그럴듯할뿐, 학교 입장에선 사실상 그냥 부려먹는 셈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배움터지킴이 제도는 현행법상 각 시•도 교육청의 자율성이 인정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알아서 하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