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너머의 영화들] 18. 아리 애스터(Ari Aster) ‘미드소마’
[시간 너머의 영화들] 18. 아리 애스터(Ari Aster) ‘미드소마’
  • 인천일보
  • 승인 2020.09.14 17:15
  • 수정 2020.09.16 10:57
  • 2020.09.1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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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낯선 세계로의 특별한 초대
▲ 영화 '미드소마' 중 하지제 의식에 참여하는 호르가 마을 사람들의 모습.

 

“호르가 인생주기의 끝에 다다른 분들이에요. 저분들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에요... 삶은 원이에요. 순환하는 거죠.”

스웨덴 북부 호르가 마을의 하지제에 초대된 이방인들은 첫날에 거행된 '절벽' 의식을 목격하고는 경악한다. 두 노인의 자살행위와 이를 돕는 마을 사람들의 행위가 이방인들에겐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에 장로 시브는 마을의 오래된 풍습에 대해 설명하며 그들을 진정시키려고 애쓴다. 이는 새로운 생명을 주는 선의의 표시라고 설득하면서...

플로렌스 퓨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 '미드소마'(2019)는 90년에 한 번 9일간 열리는 호르가 마을의 '미드소마' 축제를 배경으로 기존 공포영화의 공식을 과감히 깨뜨리고 신비스러운 대낮 공포를 선사하는 독특한 공포영화이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전작 '유전'을 뛰어넘는 걸작을 탄생시키며 단 2편으로 '공포영화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영화는 가족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슬픔에 잠긴 대니가 전통적인 공동체 마을 호르가에서 하지제 의식에 참여하며 그들과 공감하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

 

공감주술에 의해 재현되는 영원회귀의 신화

눈 덮인 북유럽 숲의 이미지 위로 신비스러운 여인의 노래가 들린다. 노래는 울창한 숲 위로, 커다란 나무 위로, 숲길 위로 마치 비밀스러운 주문을 외우듯 메아리친다. '태양의 죽음'으로 어둠에 잠긴 북유럽 겨울 숲 정경과 가족의 죽음으로 대성통곡하는 대니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가 시작된다. 겨울과 죽음으로 오프닝을 연 영화는 곧바로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쬐는 호르가 마을의 한여름 축제의 밝고 화창한 분위기로 바뀐다. 아름다운 전통의상, 감미로운 전통악기 연주, 온 벽면을 장식한 벽화 등 마을의 목가적이고 전통적인 풍경은 이방인 대니 일행의 눈과 귀를 매료시킨다. 그러나 축제의 첫날부터 이방인들과 마을 사람들 간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오래된 전통풍습을 이어가며 고대의 주술적 의식을 엄숙하게 행하고 혼령과 정령의 존재를 믿는 마을 사람들의 원시적 정신세계는 외부인이 보기엔 그저 기괴하고 공포스럽고 끔찍할 뿐이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기괴한 주술적 의례는 사실 북유럽에서 아득한 옛날부터 '태양 숭배'와 '나무 숭배'의 일환으로 행해져 온 하지제 의식을 재현한 것이다. 태양의 죽음이 시작되는 전환점 하지에 '죽음 추방 의식', '불 축제' 등 공감의 원리에 의한 주술적 의식을 행함으로써, 선조들은 죽음과 재생의 순환이 해마다 반복되는 영원회귀의 신화를 창조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태양의 부활은 물론 대자연의 재생과 생명의 갱신을 기원한 것이다. 영화 속 '5월의 여왕' 대회, 마야와 크리스티안의 짝짓기 의식, 그리고 최후의 의식인 '희생제의'도 영원회귀 신화의 일환이다. 한편 '5월의 여왕'으로 등극한 대니는 자신에게 배신감만 안겨준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을 아홉 번째 제물로 선택한다. 친구들과 함께 인간제물로 바쳐진 크리스티안은 신전과 함께 불타오르고, 잎과 꽃으로 온몸이 장식된 대니는 이를 고통스럽게 지켜본다. 그리고 타오르는 불꽃이 신전을 완전히 삼키는 순간 그녀의 입가엔 야릇한 환희의 미소가 번진다.

이로써 무의미한 '역사'의 죽음과 함께 성스러운 '신화의 시간'이 도래한다. 그리고 눈 덮인 숲에 대니의 노랫소리가 메아리치고 신화는 계속된다. 영원히...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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