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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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 협궤열차 황혼길로 사라져가네. 어천 군자 소래 열세개의 간이역들. 덜커덩 덜커덩 바람과 얘기하며. 조그만 창 너머 회색빛 바다 소금. 사라져가는 추억 속으로 그리움을 실어 나르네. 올 때는 쓸쓸히 오고 갈 때는 더욱 쓸쓸히. 덜커덩 덜커덩 바람과 얘기하며. 조그만 창 너머 회색빛 바다 소금. 사라져가는 추억 속으로 그리움을 실어 나르네.”

가수 김국환이 1995년 노래한 <수인선 협궤열차>의 가사다. 사라져 아쉬운 상황을 잔잔하게 읊는다. 추억을 남기고 없어지는 열차를 마냥 그리워한다. 앞서 작가 윤후명은 1992년 <협궤열차(狹軌列車)>란 제목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시흥 소재 군자역과 달월역 등 옛 수인선 역, 소래철교 부근 바닷가 풍경, 협궤열차 타는 어민 모습 등을 배경으로 삶과 사랑에 대해 묻는다.

이밖에 수인선 협궤철도(철로 사이 폭이 표준궤도 1.43m의 절반)를 소재로 한 글을 비롯해 사진과 영화 등의 작품은 수두룩하다. 왜 그럴까. 아마 국내 유일의 협궤열차가 주는 정감어린 풍경 때문이리라. '꼬마', '느림보'로도 불린 열차는 갖가지 낭만을 싣고 달렸다. 덜컹거리면 앞 사람과 무릎이 닿을 만큼 좁은 객석, 역이 아니라도 손을 흔들면 세워주던 열차, 농어민 생계를 위한 발, 학생들의 주요 통학수단…. 수인선에서 삶의 애환이 묻어나는 광경이다.

하지만 수인선은 이런 정감과는 달리 탄생했다. 애초부터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따라 부설됐다. 1937년 8월6일 정식 운행에 들어간 수인선은 수여선(수원∼여주)과 함께 조선의 물자를 수탈한 일제의 야욕을 그대로 드러낸 철도다. 소래·군자의 천일염, 여주·이천의 쌀 등을 인천항으로 수송하는 역할을 맡았다. 인천에 정미소와 선미여공(選米女工)이 많았던 이유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다가 해방 후엔 물자보다는 사람을 더 많이 실어날랐다고 한다. 세월은 흘러 1980∼90년대 각종 도로를 개설하는 등 교통 변혁기에 들어가면서, 협궤열차는 잊혀져가는 존재로 부각됐다. 결국 1995년 12월 수인선은 폐선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랬던 수인선이 인천과 수원을 하나로 연결해 관심을 모은다. 인천역과 수원역을 잇는 복선전철 공사 중 마지막 미개통 수원∼한대역 구간이 지난 12일 정식으로 개통하면서다. 기존 협궤노선 폐선 이후 25년 만이다. 이동 시간도 70분으로 줄었다. 수인선 완전 개통으로 인천과 경기 서남부(시흥·안산·화성·수원)에서 동부(용인·성남 등) 간 이동이 편리해졌다. 거점 역인 수원역(KTX·경부선 일반철도·1호선·분당선)으로 이동하는 거리와 시간도 단축됐다.

수인선 개통에 발맞춰 인천발 KTX 사업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2025년쯤 수인선 노선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인천발 KTX가 개통하면, 인천과 전국은 반나절 철도 생활권으로 묶인다. 차질 없이 추진되길 바란다. 그렇게 해야 인천은 비로소 '사통팔달 교통 요충지'로 거듭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