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형 수필가

이십 년도 지난 이야기이다.

중국을 여행하다 발목이 접질렸는데, 자고 나니 퉁퉁 부어오르며 아팠다. 통역을 앞세워 병원을 찾았는데, 건물 규모가 대단히 커서 일단 마음이 놓였다. 그런 기대도 잠시, 안내창구 앞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줄이 끝이 안 보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의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발목을 대충 살피더니 처방전을 써주고는 약국으로 가라고 했다.

서둘러 귀국해 정형외과를 찾았는데 의사는 왜 이 지경까지 되도록 놔두었느냐며 핀잔을 줬다. 치료의 질이 중국과는 천지 차이였다.

요즘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이슈는 공공의대 설립이다. 전남지역 두 곳에 설립하는데 사회단체가 학생들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전액 국가가 학비와 실험실습비, 기숙사비까지 지불한다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졸업하면 의사가 없는 낙후지역에 우선 배치해 의료사각지대를 없애고, 국민에게 평등한 의료 편의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국내 언론에 보도된 적은 없지만 국회속기록에 따르면 이미 지난 2월에 이런 논의가 시작됐다고 한다.

여기에는 의사들은 돈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들, 부모 잘 만난 사람들,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상류층이므로 응징해야 한다는 이념의 잣대가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공공의대 설립을 발의한 위정자들은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언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로만 보는 듯해서 안타까울 뿐이다.

의대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창시절 수재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의대에 입학하고 나서도 두꺼운 원서를 밤새 읽고, 선배 의사들로부터 혹독한 꾸지람을 들으며 수련의 과정을 거친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다.

그런데 왜 수재들은 의대를 지원할까? 의사가 되어 돈 많이 벌고 싶어서라고 하면 이타심 없는 나쁜 사람일까? 사람은, 아니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이기적이다. 심지어 식물조차 햇빛을 좀 더 많이 보기 위해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가지를 뻗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야 오죽하겠는가? 이기심의 발로를 부정하지 말자. 그 이기심이 나쁜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고 선한 방향으로 발산하도록 제도와 법을 만들어 규제하면 된다.

이타심만을 앞세워 나쁜 사람이라고 매도해서는 안될 일이다. 공공의대의 학생을 사회단체에서 추천받아 선발한다는 것도 문제다. 이곳저곳에서 현대판 음서제도의 출현이라고 걱정한다. 대개의 대형병원은 의대를 운영하고 있지만, 적자에 허덕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재벌들이 재단을 만들어 적자를 메워주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서남대학교병원이 그랬고, 공공기관인 '진주의료원'이 빚더미로 폐쇄됐다. 이렇게 될 가능성이 큰 공공의대 재정을 과연 무엇으로 감당하려는지 걱정이 앞선다. 한국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받을 수 있는 세계 유일한 나라이다.

싼 의료비 덕분에 동네병원은 노인들의 의료쇼핑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의사들은 분초를 다투며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해 병원의 재정수지를 맞추기 위해 혈안이다. 이런 의사들에게 슈바이처가 되라고 강요만할 수는 없다.

의사는 돈만 밝히는 이기주의자들이 아니다. 그들도 돈 많이 벌어 잘 살고, 자식들을 더 잘 키우고 싶어 하는 평범한 우리의 이웃일 뿐이다. 공부 많이 하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의사들이 대접을 조금 더 받는 게 공평한 사회가 아닌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