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내 나리 여자라,' 전
혜경궁 홍씨 '한중록' 매개로한 설치작품 등 통해
역사 속 여성의 존재·표현 기록 … 동시대적 정서 고찰
▲ 임민욱 작가 '봉긋한 시간'. /사진제공=수원시립미술관

 

여성은 어떤 존재인지, 여성은 어떤 표현과 기록을 해왔는지, 여성의 사회·정치 참여는 어떤 형태를 보여왔는지 등 여성에 대한 동시대적 정서를 고찰하는 전시가 열린다.

수원시립미술관은 개관 5주년을 기념해 수원의 주요 인물인 혜경궁 홍씨가 작성한 '한중록'을 매개로 '여성'을 주제로 한 전시 '내 나리 여자라,'를 개최한다.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비였던 혜경궁 홍씨는 자전적 회고록인 '한중록'을 통해 팔십여 년 파란만장했던 삶의 영욕을 기록했다. '내 나니 여자라'는 한중록에 나와 있는 문구로 태몽을 통해 사내아이로 알았던 혜경궁 홍씨가 여자로 태어나자 '태어나 보니 여자더라'하며 실망했던 주변인들의 한탄을 표현한 대목이다. 이는 혜경궁 홍씨와 같이 당시 여성들이 처한 불합리와 불평등을 상징한다. 수원시립미술관 박현주 홍보담당은 “이번 전시 타이틀 '내 나니 여자라,'에 문장부호 반점(,)을 찍은 것은 고정된 여성성에 대한 전복을 통해 여성의 무한한 가능성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려는 의미를 함축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총 3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13인(팀) 작가가 회화, 설치, 미디어 등 총 4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1부 '내 나리 여자라,'는 권력과 역사 속에서 그림자, 혹은 약자로 인식되어 온 여성 존재 자체를 재조명한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원류 윤석남은 목조각 작품 '빛의 파종-999'(1998)과 '우리는 모계가족'(2018)에서 부계 전통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장혜홍의 '黑-black project 2020'은 혜경궁 홍씨의 탄생 285주년을 상징하는 총 285개의 패널로 구성된 작품이다. 명주 위에 검은색을 수천 번 붓질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쌓아올렸다.

2부 '피를 울어 이리 기록하나,'에서는 여성들의 표현과 표출, 기록을 다룬다. 최슬기·최성민으로 구성된 그래픽 디자이너 듀오 슬기와 민은 1961년부터 2020년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한중록' 열세 판본을 동시에 읽는 작업 '1961-2020'(2020)을 선보인다. 해석이 쌓여 공공의 기억이 되는 과정을 탐색한다. 강애란은 스스로 빛을 내는 책으로 구성된 '현경왕후의 빛나는 날'(2020)을 통해 흐릿한 역사의 기록을 뚜렷하고 생생하게 되살린다.

3부 '나 아니면 또 누가,'에서는 여성의 사회, 정치 참여를 둘러싼 시각을 살펴보고, 여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임민욱은 삶의 근원적 허무함에 대한 성찰로 이끄는 영상작업 '봉긋한 시간'(2019~2020)과 설치작업 '솔기'(2019~2020)를 선보인다. 작가는 삶과 죽음이라는 이치를 탐지하며 무한성과 유한성을 동시에 기록한다. 제인 진 카이젠(덴마크)과 거스톤 손딘 퀑(미국)이 공동 제작한 '여자, 고아, 그리고 호랑이'(2010)는 여성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지촌 매춘부,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된 여성들의 진술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를 통해 개인의 트라우마와 역사의 간극을 들춘다. 전시 기간은 8일부터 11월29일까지다.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 따라 8일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됐다.

/박현정 기자 zoey050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