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권 인하대 명예교수

최근 정부가 공공의료체계 확대를 위해 지방에 공공의과대학을 설립하여 의료인력 양성을 증원한다는 정책을 추진하였다가 전공의와 의료계의 반발에 의해 정책을 접은 사건이 있었다. 국민들은 의사들이 많이 배출되어 어디서나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기를 원하는데, 의사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유사한 상황을 법조인을 배출하는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정원과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에 대한 변호사협회의 반발에서도 볼 수 있다. 국민들은 판사•검사 수를 늘여 신속한 재판과 사건처리를 원하고, 변호사들이 많이 배출돼 저렴한 법률서비스를 받기 원하는데 판검사와 변호사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의 공통된 사고는, 의사•판사•검사•변호사 모두 고도의 전문성을 갖는 직업이기 때문에 자격을 최대한 강화해서 국민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일반대중들의 요구는 이런 의사•변호사 협회 주장과 충돌해 무산되기 일쑤다. 왜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가?

올슨(Mancur Olson)은 집단행동의 원리에서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하고 있다. 숫자가 많은 일반대중의 주장과 소수의 이익단체 주장이 충돌하는 경우에 누가 승리를 쟁취하는가? 바로 소수의 이익단체가 승리하며 그들의 주장이 정책에 주로 반영된다. 일반적으로 수적으로 우세한 일반대중이 소집단의 요구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나,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 소집단의 요구가 강력하게 반영되는 것이 현실이다. 왜? 이것은 소집단과 일반대중이 집단행동에서 다음과 같은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첫째, 소집단은 특정정책을 통하여 독점적 이익을 확보하는 반면에 일반대중들은 보편적 편익만을 취한다. 둘째, 소집단은 집단행동을 강제할 수 있으며, 이탈하는 구성원의 확인이 가능하고 이들에 대한 벌칙 혹은 선별적 제재가 가능하다. 셋째, 일반대중들은 조직화가 어려우며 타인의 기여에 무임승차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이런 집단행동의 차이로 인해 소집단과 일반대중이 상충된 요구를 보이는 경우에 대부분 소집단의 승리로 귀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의료계 사건을 되집어 보자. 의사는 환자를 진료하는 독점적 권한을 갖는다. 그래서 권한에 따른 공공의료의 책임도 부여받고 있다. 이런 관계로 국가에서 의과대학 정원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전공의협의회나 의사협회는 거칠게 말해 자신과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결사체이지 공공을 위한 집단이 아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방법론적 개인주의 차원에서 정치인이 추구하는 최종 목표는 재선이지 국익추구가 아니다. 관료들 또한 명목상으로는 공익과 시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계층제에서 승진과 승급을 목표로 일하고 있다. 물론 소수의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의사들은 국민과 공공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지만 대다수는 개인주의에 따라 행동한다. 그럼 시민은? 대다수가 자신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경우 무임승차를 하려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원리가 점차 바뀌고 있다. 다수의 침묵하던 무임승차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결집하기 시작했다. 즉, 다수의 시민들이 손쉽게 사이버 공간에서 결집하여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래서 축구응원을 위해 붉은 악마가 모였고, 박근혜 탄핵을 위해 촛불시위가 열렸으며, 방탄소년단 팬들이 모여 아미(A.R.M.Y)를 구성해 K-POP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대중들에게 IT기술 발달이 강력한 대응무기를 선사한 것이다.

이제 전문가 집단도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힘이 센 집단의 이익이 도를 넘어 비합리적으로 추구된다면, 그동안 침묵했던 대중들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올슨의 집단행동 원리도 바뀌어야 한다. 일반대중은 조직화가 어려우며 무임승차하려 한다는 내용을 폐기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정부도 바뀌어야 한다.

그냥 밀어붙이기로 정책을 결정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래서 전문가 집단, 시민들과 소통하며 협치를 해야 한다. 지금은 결과가 옳다고 정책의 정당성이 인정받는 시대가 아니고, 과정까지도 전문가•시민과 함께해야 성공한다는 것을 정부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