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논의를 선도하고 있는 경기도에서 가장 먼저 내놓은 농민기본소득이 조례제정을 앞두고 또다시 주춤하는 모습이다. 당초 농민기본소득을 조속히 도입하자고 촉구했던 도의회가 후반기 들어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도의회 농정위는 한해 1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는 농민기본소득 예산을 제하고 나면 나머지 농업 관련 예산이 현저히 적다는 이유를 들었다. 따라서 각 상임위에서 1명씩을 뽑아 '기본소득위원회'를 구성해 논의 후 조례안 처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속이 타들어 가는 건 역시 농민단체들이다. 각종 재난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판국에 기본소득 논의마저 미뤄지게 된 게 농민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논의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싶다. 농민기본소득의 목표가 당장의 적자나 손실을 메우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현재의 농업분야 예산을 줄여서 기본소득 예산으로 사용하자는 구상은 단견일 수 있다.

기본소득의 관건은 상상력에 달려 있다. 한 사회의 미래는 상상력에 비례하고, 농민기본소득은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를 처음으로 설계해 실천해 보는 첫 시도다. 반대로, 현재의 농업은 빈곤한 상상력이 낳은 결과다. 비교우위에 입각해 소외된 채로 오랜 시간 명맥이나 유지하면서 상시위기를 초래해 왔던 탓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 농민기본소득이 갖는 의의를 농업분야에 한정시킬 이유는 없다.

시작은 비록 농업에서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어떤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지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다. 근거 없는 성공을 믿어보자는 주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그 과정, 과정에서 도달할 무수한 지점들에서 우리는 또 다른 꿈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조급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듯이 몇 가지 문제들이 해결된다면 굳이 오래 끌어야 할 명분도 딱히 없다. 기본소득 논쟁에서 지금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지금처럼 논쟁이 과하고 경직된 상황에서는 농업이라는 특정 분야에 한정해 실천해 보는 방식 또한 매우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