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

 

강가에서

그대와 나는 비를 멈출 수 없어

대신 추녀 밑에 멈추었었다

그 후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다시 한 번 멈추었었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강은 젖지 않는다 오늘도

나를 젖게 해 놓고,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은 우리가 떠난 뒤에는

비 사이로 혼자 들판을 가리라

 

혼자 가리라, 강물은 흘러가면서

이 여름을 언덕 위로 부채질해 보낸다

날려가다가 언덕 나무에 걸린

여름의 옷 한 자락도 잠시만 머문다

 

고기들은 강을 거슬러 올라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 일단 멈춘다

나무, 사랑, 짐승 이런 이름 속에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난다

 

비가 온다, 비가 와도

젖은 자는 다시 젖지 않는다

 

흘러감과 멈춤의 이중주를 잘 드러내는 시라고 할까. 비와 강은 흘러가고, 시간과 '그대'도 흘러간다. “머물고 싶어” 멈추는 것은 '나'와 '고기들'이다. '나'는 그대와 함께 멈추었던 추녀 밑 그 자리에 다시 한 번 멈추고, '고기들'은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멈춘다. 하늘이 닿는 지점에서야 멈추는 그 이름은 '사랑'이다.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흘러도 흘러도 다시 젖지 않는 머물러 있는 사랑도 있다. “내 안에서 그대 안으로 젖지 않고 옮겨가는 시간”이 야속하게 느껴지지만, 비오는 강가에서 그대와 내가 머물렀던 그 자리에 다시 한번 멈추는 행위는 사랑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속에 내가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머물고 싶고, 멈추고 싶은 추억과 사랑이 있다. 흔적이 있고 내가 있다. 그래서 사랑의 발생지를 '순례'하는 '나'는 비가 와도 다시 젖지 않는 자이다. 사랑과 흔적 속에서 “얼마 쉰 뒤 스스로 그 이름이 되어 강을 떠나는” 그 모습이 쓸쓸하지만은 않은 이유다. 사랑은, “나를 젖게 해 놓은” 사랑은, 잠깐 쉬었다 갈 수 있는 우리 인생의 순례지가 아닐까.

/강동우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