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않고 기운 있을 때 후배들에게 자리 내주는 게 순리”


인천고·한국해양대 졸업하고 인천항과 '인연'
인천대교 주경간 폭 700m 땐 선박 입출항 곤란
연구용역 비용 모금하며 2006년 '인사 80' 결성
2008년 800m 확장 성과 내고 '인사 800'로 확대
물동량 축소 예측 재조사 앞장서 신항 건설 '물꼬'
16m 증심 주장 관철…코로나 여파 속 성장 기반
▲ 인천대교 주경간 폭 800m 확장, 인천신항 건설 및 증심, 인천∼중국 컨테이너선 개방 등 인천항의 굵직굵직한 현안에서 인천의 목소리를 냈던 남흥우 전 인천항을 사랑하는 800모임 회장이 인사 800을 끝으로 공공활동을 모두 내려 놓았다. 현재 ※천경 경인지역본부장으로 활동중인 남 전 회장은 반백년 고락을 함께 한 인천항의 발전을 위해 후배 지원에 나서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photohecho@incheonilbo.com

 

“박수칠 때 떠나라, 기운 있을 때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인천지역 원로이자 인천항의 산 증인 남흥우(68) 전 인천항을 사랑하는 800 모임(이하 인사 800) 회장이 15년간 정들었던 인사 800 회장에서 물러났다. 공부하는 인천항 CEO 모임인 인사 800은 2006년 설립 이후 내공을 쌓으면서 인천항은 물론 전국 어느 항만에서도 존재를 찾기 힘든 항만 대표 모임으로 성장했다.

남 전 회장의 공직 은퇴에는 4~5년이라는 준비기간이 있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 떠날 준비를 미리 해야 한다'는 신념대로 하나하나 자리를 내놓으며 지역에서 화제를 모았고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인천대교 주경간 폭 800m, 인사 800의 인연

인천 송도국제도시와 인천국제공항이 들어선 영종도를 잇는 인천대교는 인천의 부를 140조원 끌어 올린 인천의 상징물이다. 어려운 IMF 시기에 외자 유치를 이끌어내 민간 투자 사업으로 건설한 교량으로, 총 26조원의 생산 유발액을 창출하기도 했다. '바다 위의 하이웨이'라는 별명을 지닌 총길이가 1만2300m에 달하는 현존 국내 최장 다리다.

인천대교가 송도국제도시와 영종도를 잇는 다리이다 보니 다리를 떠받히는 주경간이 설계 당시인 2004년 인천항의 최대 항로인 팔미도~인천내항~인천북항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주경간 너비는 700m. 인천항에 입출항하는 15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급 이상 컨테이너선의 교차 통행이 불가능했다.

인천항만업계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는 '인천대교(제2연륙교) 주경간 폭 확대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주경간 폭 확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주경간 너비가 700m로 결정되면 중·소형 컨테이너선의 교차는 물론 대형 선박 입출항이 어려워져 결국 인천항 물동량이 떨어지고 이는 인천신항 건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주경간 폭을 넓히기 위한 논리싸움이 시작됐다. 시뮬레이션을 통해 중·소형 컨테이너선의 교차가 어렵다는 점과 대형 선박 입출항에도 지장을 준다는 연구용역이 필요했다.

남흥우 전 회장은 “인천대교 주경간 폭을 확장하기 위한 연구용역 비용으로 8000만원이 필요했다”며 “공동대표로 있던 선주협회 인천지구협의회에서 모아야 했던 800만원을 80명이 10만원씩 마련해보자는 취지에서 모금운동이 시작됐다. 예상보다 많은 성금이 모아졌고 회원들이 '논리'를 갖춰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자연스레 '인천항을 사랑하는 80인 모임'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중앙정부와 인천대교 주경간 폭을 800m로 확장하는데 합의를 했고 시민사회에서는 인천의 힘이 하나로 결집되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인천경제의 3분의 1를 차지하는 항만업계에서는 주경간 폭 확장의 당위성을 제안하고 범시민대책위원회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한 항만업계에서는 공부하는 항만 CEO 모임 인사 80이 탄생했다. 인사 80은 항만업계의 성원 속에 2008년 7월 인천항을 사랑하는 800 모임으로 확장됐다.

 

▲인천항의 가치 물동량으로 입증

2000년대 중반 인천항은 인천대교 주경간 폭 확장과 함께 인천항의 미래가치를 제대로 평가받는 것이 중요한 화두였다.

1970년대 인천 주안과 부평에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인천은 공업도시로 빠르게 성장했다. 수도권을 배후도시로 한 관문도시로써 인천항은 수입 원자재가 들어오는 관문이자 공산품 수출기지였다.

인천고를 나와 한국해양대를 졸업한 그는 1982년 고려해운㈜ 인천사무소에 근무하면서 인천항과 숙명적인 인연을 시작했다.

그는 “인천항을 찾는 외국 선원들이 인천항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항만이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천항의 위상이 높았다”며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 들어서며 인천항에 제때 배를 대지 못하고 하역이 힘들 정도로 채선·채화가 심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중앙정부는 수도권 집중을 막고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부산항을 앞세웠다. 거대 사회 인프라인 항만건설 투자에도 중앙정부는 인색했다. 급기야 항만건설의 기초가 되는 컨테이너 물동량 예측치마저 왜곡되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인천항 홀대'가 인천일보 지면에 오르내렸다.

남 전 회장은 “한창 인천대교 주경간 폭을 놓고 중앙정부와 인천시민사회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때 해양수산부가 신항 건설의 기초가 되는 컨테이너 물동량 예측치를 축소발표했다”면서 “난리가 났다. 인천신항 건설이 물건너 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근거를 들어 재조사를 요구해 결국 인천신항이 건설되는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는 2005년 '2011년 인천항의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예측치'를 5년 전 추정치보다 92만TEU 축소해 발표했다. 2003년 인천~중국 컨테이너선 개방 등으로 인천항의 물동량이 증가하면서 인천항 채선·채화가 지역사회가 이슈가 되던 시기였는데도 미래 물동량 예측치는 현실을 반영하기는 커녕 더 떨어진다는 예측치에 인천항만업계는 격분했다.

남 전 회장은 인천항만업계와 함께 예측 물동량이 왜곡됐음을 밝히고 재조사를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 이를 기반으로 인천신항이 건설됐고 2017년 부산항에 이어 인천항이 300만TEU를 달성하면서 그의 예측이 옳았음이 증명됐다.

인사 800은 2012년부터 2년여 동안 대형 컨테이너선 입출항을 위한 인천 신항 증심(수심 14→16m) 사업을 줄기차게 주장했고 목표를 이뤄냈다. 현재 인천항에 기항하는 컨테이너선 중 최대 규모는 1만TEU급이다. 인천항은 올해 코로나19의 여파에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컨테이너 물동량이 증가하며 몸값을 높이고 있다.

 

▲박수칠 때 떠나려면, 준비를 철저히

1990년대 후반 인천항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남 전 회장은 선주협회 인천지구협의회장으로, 인사 800 회장으로 인천항을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2001년 수입냉장·냉동농산물에 대한 직통관을 관철시켜 관세청장 표창을 받을 것을 비롯해 2003년 인천~중국 컨테이너선 개방, 2005년 인천항만공사 초대 항만위원, 2006년 인사 80 결성, 2008년 인사 800 확장 등 인천항 현대사와 맥을 같이 했다. 인천항이 인천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면서도 지역사회와 호흡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2014년부터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로 시민사회 활동을 이끌기도 했다.

남 전 회장은 “8년 전 환갑에 인천일보 등에 기고한 글을 모아 환갑잔치를 대신한 출판기념회를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후배를 성장시킨다는 것, 나부터라도 모범이 보여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서서히 준비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임제한규정이 있는 인천경실련 공동대표는 공동대표 인선이 마무리된 2019년 자리를 내놨고 상징과 같았던 인사 800은 아예 회칙을 개정해 상임 부회장직을 만들어 경험을 쌓게 했다. 현 인사 800 회장은 상임 부회장이었던 양창훈 인천복합운송협회 회장이 맡고 있다.

주경야독으로 물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성결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던 객원교수직도 내려놓았다.

그는 “힘 딸리고 끈 떨어졌을 때 자리에 집착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기운 있을 때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놓는 게 순리에 맞다고 생각했다. 어느날 갑자기 '나 그만둔다, 알아서 해라'하는 것도 무책임한 행동이 될 수 있다”면서 “차근차근 순리를 밟아가야 후배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고, 뒤에서 더 힘있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남 전 회장은 “인천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 시장인 중국과 가깝고 인천국제공항과 인접해 있어서 정부와 지역사회가 힘을 보태면 세계적인 항만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서 “반평생을 함께 한 인천항이 앞으로 더욱 큰 역할을 하길 바란다. 인천항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후배들의 뒤에서 힘이 닿는 데까지 돕겠다”고 말했다.

/김칭우 기자 ching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