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지난 주 불어닥친 태풍 '바비'는 다행히 잠자는 사이 지나갔다. 잠 귀 밝은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아파트 유리창이 엉엉 우는 듯 했다”고 한다. 바비의 최대 풍속은 나무를 뿌리채 뽑아내고 평균 풍속에도 사람이 정상적으로 걷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와중에 경기 시흥의 신천동 화훼농가단지에는 보기 드문 풍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바로 '트럭 방패'다. 비닐하우스 60여 동이 밀집해 있는 이 화훼단지를 거대한 덤프트럭 25대가 사방으로 에워싼 것이다. 덕분에 이 곳 농가들은 아무 피해 없이 이번 태풍을 넘겼다. 시흥 화훼단지의 트럭 방패는 지난해에도 출격했다. 경기도에서만 축구장 27개 규모의 농가 비닐하우스 피해를 남겼던 지난해 9월의 태풍 '링링'도 그렇게 탈없이 넘겼다는 것이다.

▶태풍이 지나가면 TV 뉴스에 단골로 비치는 화면이 풍비박산이 난 비닐하우스들이다. 시흥 화훼단지도 2010년 태풍 '곤파스'때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지고 애써 기르던 꽃들이 망가졌다. 태풍 예보만 있으면 농민들은 발을 동동 굴리며 하우스를 다시 묶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다 누구에게선가 덤프트럭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시흥시건설기계협회도 적극 나섰다. 어차피 태풍이 닥치거나 야간에는 하던 공사도 멈추게 된다. 처음에는 농민들이 알음알음으로 덤프트럭들을 수소문해 완전한 방패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시흥시의회의 한 의원이 앞장을 서 화훼단지와 시흥시건설기계협회를 맺어줬다고 한다. 곧 닥칠 태풍 '마이삭'때도 시흥 트럭 방패는 농민들을 지켜줄 것이다.

▶그 즈음 평택시의회에서도 제대로 된 발언이 하나 나왔다. 발언의 골자는 시민 세금을 너무 축내거나 실효성도 없는 상징적 조례 발의는 좀 자제하자는 자체적 촉구였다. 회의록을 찾아보니 과연 그럴만 했다. 제8대 평택시의회 전반기 2년 동안만도 123건의 조례 제•개정이 발의됐다. 제7대 4년간 87건에 비하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이에따른 소요 예산도 160억원으로 제7대 4년간의 93억원을 훌쩍 앞질렀다. 이 날 발언에서는 실효성도 없이 단순히 선언적이거나 권위적, 상징적 조례에 대한 문제 의식도 제기됐다. 언제부턴가 조례 발의 건수로 지방의원을 평가하더니 마침내 괴물처럼 폐단이 돼버린 셈이다. 3년 전 제주도의회에서는 엉터리 조례들을 미리 심사해 퇴출시키는 조례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시민들에게 법이나 조례는 적을 수록, 간결할 수록 좋은 것이다.

▶올 상반기, 전국의 지방의회들이 의장단 감투싸움 등으로 체면을 있는대로 구겼다. 어떤 고장에서는 동료 남•여의원들간 막장 불륜 스캔들까지 터져나왔다. 그러나 '트럭 방패'나 '엉터리 조례' 자정 운동도 있어 희망을 걸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