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너머의 영화들] 17. 짐 자무쉬(Jim Jarmusch) '데드 맨'
[시간 너머의 영화들] 17. 짐 자무쉬(Jim Jarmusch) '데드 맨'
  • 인천일보
  • 승인 2020.08.31 17:01
  • 수정 2020.08.31 17:21
  • 2020.09.01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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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로 향한 병든 영혼의 상반된 두 여정
▲ 영화 '데드 맨' 중 인디언 노바디가 백인 친구 윌리엄을 '물의 거울'로 떠나보내는 장면.
▲ 영화 '데드 맨' 중 인디언 노바디가 백인 친구 윌리엄을 '물의 거울'로 떠나보내는 장면.

 

“매일 밤, 그리고 매일 아침 누군가 고통으로 태어난다네. 매일 아침, 그리고 매일 밤 누군가 달콤한 기쁨으로 태어난다네.”

인디언 노바디는 우연히 만난 백인의 이름을 듣더니 놀람과 함께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영국 신비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 시구를 읊는다. 노바디는 이름이 같은 백인을 그 시인의 환생으로 여기며 총에 맞아 죽어가는 그를 '신세계'로 안내하는 여정에 동참한다.

할리우드 스타 조니 뎁 주연의 영화 '데드 맨'(1995)은 미국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짐 자무쉬 감독이 의도적으로 웨스턴 장르를 차용하여 비꼬면서 '서부 개척사'를 미화해 온 웨스턴 영화를 비판한 로드 무비다. 영화는 서부 개척이 한창이던 19세기 미국을 배경으로 동부 클리블랜드 출신의 회계사 윌리엄 블레이크가 일자리 때문에 서부 머신타운으로 가면서 겪게 되는 죽음의 여정을 샤머니즘적 접근법으로 그려내었다.

상반된 두 여정, '선형(線形)'의 여정과 '원형(圓形)'의 여정

직선으로 뻗은 선로를 따라 앞을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다양한 각도의 기차바퀴 클로즈업과 기차 안에서 차창 밖과 주위를 둘러보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 윌리엄 블레이크의 모습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오프닝을 연 윌리엄의 서부행 기차여행은 백인들에 의해 자행된 '서부 강탈사'를 함축하여 보여준다. 종점에 가까워질수록 차창 밖 풍경은 숲에서 황무지로 변해가고 승객들은 갈수록 험악한 사람들로 바뀐다. 급기야 버팔로를 향해 총을 쏴대는 사냥꾼들에 둘러싸인 윌리엄은 공포에 몸을 부르르 떤다. 영화는 병들고 상처 입은 한 백인의 영혼이 경험하게 되는 상반된 두 여정, 즉 백인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선형의 여정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원형의 여정을 그린다. 검은 연기와 시끄러운 소리를 내뿜는 기차에 의해 대륙을 가로질러 도착한 선형의 여정 종점은 더럽고 추악하고 잔인하고 탐욕적인 백인들이 창조해낸 지옥 같은 '신세계'다. 그곳은 '서부 개척 신화'의 주역들, 즉 모피사냥꾼, 총잡이, 청부업자, 보안관, 선교사들이 활개를 치고 개인주의와 물질주의가 팽배한 물적(物的) 세계다. 반면에 윌리엄이 치정에 얽히는 바람에 총상을 입고 도망가다가 만난 인디언 노바디의 안내로 도착한 원형의 여정 시점은 깨끗하고 고결하고 온화하고 신성한 인디언들이 창조해낸 천국 같은 '신세계'다. 그곳은 추장을 중심으로 부족민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위대한 영혼' 조물주를 섬기는 영적(靈的) 세계다. 인디언 노바디는 시작과 끝만 있는 백인들의 선형적 세계에서 상처 입고 죽어가는 백인 친구 윌리엄을 카누에 눕혀 끝과 시작이 만나고 죽음과 삶이 만나는 원형적 세계로 떠나보낸다. 인디언 노바디와 백인 킬러 콜 윌슨이 서로 총격을 하다 둘 다 쓰러지는 광경을 뒤로 한 채 카누는 드넓은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물의 거울'을 향해 서서히 나아간다.

눈을 감기 전 윌리엄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구름을 올려다본다. 이 순간 영화의 끝과 시작이 만나고 삼라만상이 연결되며 '성스러운 원'이 그려진다. 그리고 정화되고 치유된 그의 영혼이 다시 태어난다. 달콤한 기쁨으로…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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