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 언론인

프랑스에서 언론사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파리를 방문한 친지들과 자주 찾은 화가와 관련된 명소는 바르비종과 오베르-쉬르-우아즈였다. 파리 남쪽에 위치한 바르비종은 만종으로 유명한 농촌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가 동료 화가들과 바르비종 화파를 형성하여 말년까지 활동한 전원 마을이다. 파리 북쪽에 있는 오베르-쉬르-우아즈는 반 고흐가 세상을 떠나기 전 70여일간 머물면서 80여점의 작품을 남긴 곳이다.

▶샤를 프랑스아 도비니(1817~1878)는 파리에서 태어나 당시의 유명화가 코로와 친해 바르비종 화파에 참여했다가 중년이 되어 우아즈 강변에서 강 풍경을 그리다가 강변 마을 오베르-쉬르-우아즈에 정착해서 화가들의 마을을 만들었다. 바르비종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오베르에서 숨을 거둔 도비니를 반 고흐는 좋아했다. 바르비종 화파의 대표작가인 밀레의 농촌 작품도 좋아한 반 고흐가 일생의 마지막을 오베르에서 지냈다는 것은 우연이라기 보다는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베르-쉬르-우아즈를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르던 곳은 반 고흐가 묵었던 라부 여관과 마을 공동묘지에 동생 테오와 함께 잠자는 묘지였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반 고흐를 치료해 주던 가셰 박사 저택과 교회당이었다. 천재 작가의 슬픈 기억에 연관된 유적지들이지만 갈 때마다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반 고흐가 살아서 생의 마지막 정열을 쏟아 하루에 한 점 이상의 작품을 하던 당시와 별로 다르지 않게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였다.

▶10여년 전부터 라부 여관을 반 고흐의 고국 네덜란드의 사업가가 사들여 기념관으로 새단장하고 고급식당을 개업한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라부 여관에서 공동묘지를 가려면 화가 도비니의 이름을 딴 거리를 따라 교회당을 지나면 대표작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통과하게 된다. 작은 마을 어디를 가던가 반 고흐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도비니 거리 37번지에는 산비탈에 오래된 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 고흐의 집에서 과학 디랙터로 일하는 판테르빈 박사는 반 고흐의 생애 마지막 작품인 '나무 뿌리들'에 나오는 나무들이 바로 도비니 거리 37번지의 나무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암스테르담의 고흐 미술관에 이를 보고했고 수목학자 마에스 박사가 “매우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반 고흐의 동생 테오의 증손자인 벨렘 반 고흐는 우아즈에 와서 '나무 뿌리들' 앞에 서서 감격해했다. 코로나 사태로 관광객들의 발길도 끊긴 곳에 새로운 명소가 생겨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