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죽음에 입을 닫는 이유
▲ 이일영·이인미·이재경·도이·황인혁 토론·편집, 지식공작소, 608쪽, 1만7500원.

할 말을 고르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박원순이 죽었다. 사고였다거나 지병이 있었다든지 하다못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이유가 아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성폭력이라는 단어가 이어 따라온다.

수줍어 보이기까지 했던 그의 서민적 이미지와,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우리 사회에 기여한 공 중에서도 여성 운동가를 자처했던 평소 박 시장의 젠더의식이 신기루 마냥 아른거리다 사라진다.

뭐라고 해야 하는데 할 말이 없다.

지식공작소가 펴낸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은 박원순 쇼크 앞에서 입을 닫아버린 활동가, 학자, 정치인, 여성, 남성에 대해 얘기한다.

책 앞부분은 교수와 학자, 작가 등 5명이 그의 죽음과 시민의 침묵에 대해 토론한 내용을 담았다. 나머지 절반은 박원순을 계기로 지난 2년6개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미투운동을 되돌아 본다. 조민기, 이윤택, 고은, 안태근, 안희정 등에 이르기까지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것이다.

책은 현재 밝혀지지 않은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그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 앞에 놓인 여러 사람들의 격동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박원순은 현재 위험한 주제라고 진단했다. 어떤 견해나 주장도 상대로부터의 공격에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이 문제에 대해 건설적인 의견조차 드러내기 어렵다.

이 책은 기억이 기만이 되고, 사실이 마술이 되고, 생각이 불길이 되고 말이 칼이 되어 모두가 적이고 세상엔 나밖에 보이지 않는 싸움터가 되기 전에 대화를 하자고 손을 내민다.

침묵을 깨고 회복적 대화를 해야 하는 이유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