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정부 대책으로 조성된 입구지마을
인천도시공사 용유노을빛타운 개발로
주민들 이주대책도 없이 거리 나 앉을판
▲ 6·25 전쟁 당시 북한에서 피란 온 주민들이 모여사는 인천 중구 을왕동 산 34의 9일대 입구지 마을. /사진=마을 주민 김순옥(92)씨 아들 박윤식(61)씨 제공

 

▲과거 주민들은 바닷물이 들어오는 황무지를 개간해 지금의 마을을 조성했다고 한다. /온라인 포털사이트 항공사진 갈무리

6·25 전쟁 당시 북한에서 인천 중구 을왕동으로 피란해 70년을 살아온 주민들이 인천도시공사 개발사업으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처지다.

주거복지를 최우선에 둬야 하는 인천도시공사는 이주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주민들을 내보내기 위한 법적 대응을 강행하고 있어 논란에 휩싸였다.

24일 인천도시공사에 따르면 중구 을왕동·남북동·덕교동 일대 33만여㎡ 부지를 대상으로 '용유노을빛타운 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당초 민간사업자를 유치하려 했던 이 사업은 잇따른 공모 실패로 결국 2018년 8월 개발사업지구가 경제자유구역에서 해제됐고, 이후 공사 자체사업으로 전환됐다. 새로운 개발사업은 사업 부지에 해변을 활용한 문화예술 공간을 조성하는 게 뼈대다. 현재 사업 기본구상 수립 용역이 진행되고 있으며, 올 하반기 중 지방공기업평가원의 신규 투자사업 타당성 검토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공사는 사업 부지를 무단 점유 중인 상인과 주민 50여명을 상대로 인천지법에 토지 인도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들의 불법행위가 사업 추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소송 대상 중에 6·25 전쟁으로 인한 피란민들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을왕동 산 34의 9일대 '입구지(入口地)' 마을에 사는 16세대다. 1950년대 당시 정부가 피란민들을 위해 '정착농원'이란 이주대책을 마련해 면장 승인 아래 집을 지을 수 있는 부자재 등을 지원받아 손수 집을 짓고 한평생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70년이란 세월 동안 부지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었다. 소유권은 1964년 선인학원에서 1994년 인천시·인천시교육청을 거쳐 2006년 인천도시공사로 넘어왔다. 시는 이 부지를 공사에 현물 출자했다.

공사의 법적 대응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거리로 나앉게 될 처지에 놓인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70세 이상 고령으로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여건도 안 된다.

박윤식(61)씨는 “92세인 노모가 6·25 전쟁 당시 이곳으로 피란 와서 집을 짓고 지금까지 살아오셨고, 나도 여기에서 나고 자랐다”며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바닷물이 들어오는 황무지를 개간해 옥토로 일구고 주변 숲을 가꿔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사가 어느 날 일방적으로 공문을 보내서 개발사업을 해야 하니 나가라고 하고 있다”며 “70년간 평온하게 살아온 주민들로선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가혹한 일이다. 인천시 산하 공기업으로서 이주대책은 마련해줘야 하지 않냐”고 호소했다.

인천도시공사 관계자는 “용유도 쪽에서 공사 땅을 무단 점유하고 불법 영업을 해온 상인들을 내보내려는 것이 소송의 목적”이라며 “이들과 별개로 주거 목적으로 부지를 점유한 을왕동 주민들의 딱한 사정은 알고 있지만 현재 이주 대책 마련을 검토하고 있진 않다”고 밝혔다.

/박범준 기자 parkbj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