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임기를 고려할 때 관리형으로 그칠 수 있다는 염려도 있지만 얼마 전에 단행된 2기 안보팀의 진용을 보면 성과를 낼 수 있는 마지막 카드라는 측면이 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 대북정책 입안과 추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느냐가 중요하기에 남북관계 답보 상태를 돌파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적절한 인선이라 평가한다. 대북 관계가 답보된 원인이 시스템 때문이었다는 성찰이 필요한 이유이다. 돌이켜보면,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평양 정상회담에 이르는 동안 너무 빨리 성과를 내려 했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면 북미관계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판단해 미국의 비위를 맞추는 데 더 많은 노력을 허비 했다고 본다. 그 기간 남북 펑화공조의 토대를 놓기 위한 일들을 병행 했더라면, 거꾸로 북미 관계를 제대로 견인할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이번 개편은 무게 중심을 남북의 자주적인 펑화공조 재건으로 갈 것이라 기대한다. 새로 구성된 외교안보팀의 진정성은 근본적으로 한미동맹의 성격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여전히 냉전동맹의 성격이 강한 한미동맹을 평화를 만들어 내는 동맹으로 바꾸고, 한미 워킹그룹이 이제까지 국제사회 제재들을 잘 이행하는지 감시하는 위원회가 아니라 그런 제재를 풀어내고 평화를 구축하는 위원회로 시스템을 재조정 해야 한다.

그러러면 세 가지가 필요한데 우선, 결기가 있어야 하고 타이밍을 맞춰야 하며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3월 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코로나를 걱정하는 메시지를 보냈을 때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아 타이밍을 놓쳤다. 통일부 안에 코로나 관련 전문가가 없는 점도 문제다. 미국의 반대도 있었지만 미국 핑계만 댈 수 없는 사건이 지난해 타미블루 북송 실패였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안했기 때문에 좌절된 것이다. 장금철 담화를 보면 “자기가 한 말과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없고 그것을 결행할 힘이 없어 남북관계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 초 남북 공동민간 해돋이 행사가 금강산 해금강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열렸을 때도 북측 인사가 강하게 타미블루 문제를 제기하면서, 달라고 할 때 주면 받지만 던져 주는 것은 받지 않는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 스스로 너무 북미 관계만 바라보고 남북 독자의 시간을 놓쳤다고 아쉬움을 토로 하셨으니 그 전과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는데 현재 보도되고 있는 개별관광, 의료협력, 산림협력, 화상 이산가족 상봉으로 북한이 과연 응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단연코 불투명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제재의 틀을 건드릴 수 있는 개성공단 정도를 다뤄줘야 북측에서도 우리 정부의 고민과 실행력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개성공단을 100% 가동하지 않더라도 유엔 제재를 우회해 부분 가동이라도 할 수 있는 결기가 신호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엔안보리 제재 품목인 섬유, 석유화학류는 자체적인 업종전환을 통해서 가능하다. 의료협력도 평양에 종합병원 정도는 세워서 북측의 민심을 돌려 놓을 수 있는 명분을 줘야 한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한미워킹그룹의 운영과 기능을 재조정해야 한다며 '2.0 비전'으로 포문을 열면서 재조정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면서 개성공단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음에 주목한다. 이 장관은 지난 인사청문회에서도 '북미의 시간'을 이제 '남북의 시간'으로 돌려 놓기 위해 주도적인 대담한 변화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북 간 작은 교역(물물교환), '먹는 것, 아픈 것, 죽기 전에 보고 싶은 것'등 인도적 협력을 거듭 강조했다. 지난 2018년 11월에 출범한 워킹그룹은 비핵화, 대북제재, 남북협력 방안을 수시로 조율하는 대북 고위 실무 협의체로 구성됐다. 논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개성공단 시설물 점검 위한 기업인 방북부터, 금강산, 철도 착공 등을 두고 건마다 의견이 갈렸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 국무부, 재무부, 상무부를 거치지 않고 워킹그룹에서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효율성이 있다고 한다. 이 장관은 워킹그룸 '2.0 비전' 구상으로 시스템을 재조정하고 통일부 산하에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T/F팀을 만들어 작은 교류부터 남북의 시간표로 다시 짜야 함이 천명일 것이다.

 

신한용 신한물산(주) 대표이사 인하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