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일하던 여행사서 2월 '권고사직'
재취업 난망…타 업계 모색도 어려워
우화 속 개미처럼 노동을 짊어지고 억척스럽게 사는 사람도 있고, 그늘 밑 한가한 베짱이 같은 사람도 있다. 어떤 계기로 자의든 타의든 개미가 베짱이로 혹은 베짱이가 개미로 바뀌는 순간도 있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미선(가명·인천 거주)씨는 개미에서 베짱이로 변신한 경우다. 타의였다. 한여름 땡볕 아래 개미처럼 지난 10년 동안 여행사에서 부지런하게 일했던 그는 지난 2월 중순쯤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말부터 “사정이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회사였다. 올해 설 연휴 지나고 코로나19 사태가 심화하자마자 조직 내 인력 축소 작업이 시작됐다. 신입 직원은 물론이고 미선씨 연차와 같은 10년 남짓 경력직들도 줄줄이 회사를 떠났다.

실직 직후인 지난 3월, 퇴직금과 한 달 180만원 남짓한 실업급여, 마침 연말정산 환급금까지 통장에 적지 않은 금액이 입금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코로나19 물러갈 몇 달 동안 좀 쉬자'고 미선씨는 결심했다. 머리 좀 식히고 올 수 있는 여행지로 제주도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한 달 살 작정하고 내려갔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왔다. “하루 이틀은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풍경도 즐기며 좋았다. 사흘 정도 되니까 30살 넘어서 재취업에 대한 부담감에 마음이 뒤숭숭하고 타지에서 숙식비로 깎이는 돈들도 아깝더라. 여행 밤마다 잠들기가 쉽지 않았다”고 미선씨는 털어놨다.

4월 접어들면서 대학 동기들 무급 휴직 소식이 이어졌다. 경기도의 한 대학에서 관광 관련 학과를 졸업한 미선씨라 역시 여행사에서 일하는 대학 동기들이 많다. 미선씨는 “코로나19 초기에만 해도 항공사 해외 단항이 6월이면 재개될 거라고 했는데 초여름 접어들면서 9월로 미뤄지더니 이젠 알 수 없게 됐다. 몇 달 동안 해외는 물론 국내 여행 실적도 사라진 여행사들이 4월부터 무급휴직이나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전공을 살린 재취업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5월부터는 지키는 싸움에 돌입했다. 실직 후 100일 가까이 지났으나 재취업 가능성은 점점 더 적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모아뒀던 월급과 얼마 전 손에 쥔 퇴직금은 절대 건들지 않는 데 더해 매달 180만원 실업급여도 월급 받을 때처럼 다 쓸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저축해 앞날을 도모해야 했다.

적금 붓는 것도 이때쯤부터 멈췄다. 대신, 당시 삼성전자 주가가 폭락했다는 얘기에 예금을 조금 빼 개미 투자자 행렬에 동참했다. “직장이 없으니까 베짱이 처지인 동시에 불로소득을 고대하는 개미 투자자 신세도 된 셈이다. 여윳돈이 많지 않아 몇 주 못 사 재미는 못 봤다”고 말했다.

미선씨는 지난 6월과 7월 두 달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구직 활동을 벌였다. 문제는 여전히 관광업계 구인 손길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관광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0년 동안 여행사에서 일한 미선씨다. 언제 경기가 살아날지 모르는 업계만 지켜보기도 답답하고 그렇다고 30대 중반 여성 입장에서 이제 와 다른 길 찾는 건 더 골치 아픈 일이다.

“8월도 거의 마무리 되는 시기니까 실업급여도 앞으로 9월, 10월, 11월 3달이면 끝이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외동딸이다 보니 가정 내 주 소득원이라 씀씀이 줄이기도 쉽지 않다. 내가 그동안 일하던 일자리는 완전히 쪼그라들었고 나라에서 주는 돈도 올해가 가기 전에 끊긴다. 당장 겨울나기가 걱정인 베짱이나 다름없다. 베짱이는 여름에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느라 그랬다지만, 나는 좀 억울하다.”

/김원진 기자 kwj799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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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생의 틈을 엿보다] 2. 만들어지는 베짱이들 개미는 베짱이의 비웃음을 들어가며 한여름 뙤약볕 아래 열심히 먹을 것을 실어 날랐다. 춥고 긴 겨울 날 준비를 하기 위해서다.겨울이 오자 노래 부르며 놀기 바빴던 베짱이는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지만, 개미는 배부르고 등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2020년 8월, 서모(67·미추홀구 도화동)씨는 인천 한 요양병원에서 관리직으로 일해 왔다.24시간 교대 근무를 했던 서씨는 지난 13년간 휴가도 한 번 못 받아보고 개미처럼 일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대가는 권고사직. 코로나19로 환자가 줄어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게 이유다.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