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내달 관계기관과 탐사TF 구성 추진
강제 동원·수탈의 현장 드러날지 주목
▲ 조병창 일본군 땅굴로 추정되는 지하 시설물. /사진제공=인천시

 

“(조병창) 공장을 거쳐 완성된 총과 칼들은 검사를 통해 최종 합격 여부를 결정했다. 검사실은 지하벙커에 있었다. 지하벙커는 총을 쏴 성능을 시험할 정도로 길게 돼 있었고 불빛도 밝았다.”

이상의 인천대 초빙교수가 지난해 9월 조병창에 강제동원됐던 12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발표한 '구술로 보는 일제하의 강제동원과 인천조병창' 논문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조병창은 일제가 1939년부터 1941년까지 부평에 설치한 무기 제조소였다. 당시 한강 이남 최대의 군수공장으로 불렸던 조병창 자리에는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가 들어서 있다. 공장 건설과 무기 제작 과정에 1만명 넘게 강제동원된 현장이기도 하다.

이 교수가 수집한 증언을 보면 “지하벙커 외에도 조병창 안에는 땅굴이 여러 개 있었다”는 내용도 있다. 1944년 당시 열다섯 살의 나이로 조병창에 끌려가 지하벙커에서 옻칠을 한 총칼을 검사했던 윤용관(91)씨는 옻에 얼굴이 부어올랐고, 결국 한센병에 시달렸다. 작업장에선 어린 학생들의 사고와 부상이 잦았고, 헌병대의 구타도 적지 않았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과 수탈의 현장이었던 조병창의 '일본군 땅굴' 조사가 관계기관 협의로 본격화한다.

인천시는 9월 초 조병창 일본군 땅굴 탐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계획이라고 13일 밝혔다. 땅굴 탐사 TF에는 시와 문화재청, 국방부, 부영공원 부지를 대부분 소유한 산림청 등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병창 땅굴 출입구는 지난 2014년 부영공원과 캠프마켓 제빵공장이 있는 2단계 반환구역 경계 지점에서 발견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지하 출입시설은 2개다. 출입구와 내부 시설물은 직사각형 모양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다.

앞서 시는 지난 4월 캠프마켓 반환·개방과 연계해 조병창 땅굴 흔적을 현장 조사하기도 했다. 지금은 안전사고 방지 차원에서 출입구를 토사로 되메운 상태다. 류윤기 시 부대이전개발과장은 “관계기관과 모여 조병창 지하 시설물의 체계적 조사 방향과 기관별 역할 등을 논의하려고 한다”며 “지하 시설물에 대한 조사 연구용역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