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은 경기도 평화대변인

'경기 북부'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38선, 군대, 안보, 접경지역 등. 떠올리기도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군 시절에 대한 쓰라린 기억 때문이다.

경기도 31개 시군 중 한강 북쪽에 있는 10개 시군을 경기 북부라 칭한다. 서쪽의 고양, 파주부터 양주, 의정부, 동두천, 포천, 연천을 지나 동쪽의 구리, 남양주, 가평까지다. 세월이 한참 흘러 경기북부로 돌아왔다. 주말이면 경기 북부 탐방에 나섰다.

연천에서는 고구려 성(城)이 3개나 있다는 발견의 기쁨을, 가평 대성리에서는 나룻배 젓던 스무살 청춘의 나와도 만났다. 포천과 연천의 한탄강 주상절리는 제주도 못지않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한탄강의 가치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로 확인됐다. '소도(蘇塗)'처럼 찾아가서 위안을 얻는 왕릉은 고양, 파주, 양주, 구리, 남양주가 품고 있다.

높은 산과 물 맑은 계곡은 말없이 찾아오는 사람들을 쉬게 한다. 경기북부는 사람과 물자가 교류하는 곳이다.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고, 임진강은 한강을 만나 서해로 흐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점점 고립된 섬이 되어 갔다. 분단과 한국전쟁 후 국가안보를 도맡았던 70여년의 세월 동안 경기북부는 멀어지고 잊혀져갔다. 삶의 터전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이고 수도권정비권역, 개발제한구역 등 이중삼중의 규제에 갇혀 있다. 전국 주한미군 공여지의 80%가량이 몰려있고, 미군도시로 상징되는 동두천 땅의 반은 미군기지이다.

그 결과 도로보급률은 전국 최하위, 재정자립도(28.2%)는 전국 평균 50.4%에 한참 못 미친다. 철도나 문화시설, 의료·복지시설 등 인프라도 부족하다.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하루에 천리를 가는 명마(名馬)도 백락(천마를 관장하는 신선)을 만나야 세상에 알려진다는 말이다. 재능이 있어도 알아주는 이를 만나야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는 사람은 물론 지역도 마찬가지다. 경기북부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인구는 352만명으로 340만명의 부산, 294만명의 인천을 뛰어 넘었고, 면적은 서울의 7배나 넓다. 한반도의 중심이자 접경지라는 지정학적 특성은 유리시아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거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전국을 휩쓴 수해에서 접경지역의 집과 논밭이 잠겼다. 북한의 황강댐 방류로 임진강 수위가 급속히 올라가 주민들이 대피해야 했다. 분단 70년 동안 총부리를 겨누고 이산의 아픔은 깊어졌어도 남과 북은 연결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분단이 자연스럽지 않듯 국가안보를 위한 이들의 희생이 감내해야 할 숙명은 아니다. 낙후되고 멀어진 경기북부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고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자.

어릴 적 군부대는 커녕 군인아저씨도 보지 못하고 자란 필자와 군인이 이웃이고 대북방송과 사격장 훈련소리가 배경이었던 사람들의 삶의 경험과 이해의 범위는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 다르다는 것, 그것을 알고자 하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 소통이다.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접경'지역을 남한 내에서 '보이지 않는' 선을 만들어 밀쳐낸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는 평화를 바란다. 전쟁이 없는 평화든 매일의 삶이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 속의 평화든 소중하다. 평화는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다. 경기 북부로 자주 오시라. 자연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고 삶이 느껴진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의 서글픔보다 더 큰 간절한 평화에 대한 염원도 함께 얻어 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