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흥동 빈집을 촬영하고 있는 일본인

한동안 신흥동의 일본식 주택 몇 채가 빈집으로 남아 있었다. 집 구조가 궁금한 사람들이 가끔 '무단출입'을 감행했다. 그 집들은 다다미는 물론 오시이레(벽장), 도코노마 등 일제의 '시간'을 품고 있었다. 최근 재생건축가, 사진작가, 큐레이터 등으로 구성된 동인천탐험단은 '신흥동, 일곱주택'을 출간했다. 신흥동 재개발 지역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적산가옥 중 건축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생활문화상을 보여주는 7개의 집을 선정해 사진, 드로잉 등으로 각 주택에 대한 해설과 도면을 그려 기록했다.

한동안 필자도 이 집들을 여러 차례 출입해 나름대로의 '기록'을 했다. 홀로 빈집을 둘러본다는 것, 그것도 구조가 낯선 일본식 집을 본다는 것은 대낮임에도 머리칼이 쭈볏거리는 공포감이 있다. 지난해 8월 중순 어느 날, 그동안 두어 차례 들러 봤던 이층짜리 집에 다시 들어갔다. 이 집에는 가파른 사다리형 계단을 이용해야 들어갈 수 있는 다락방 같은 작은 방이 있다. 그날도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서 닫혀 있는 쪽문을 밀었다.

여는 순간 사다리 밑으로 떨어질 뻔했다. 두 사람(귀신인줄 알았다)이 좁은 방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으악, 누구…세요” 그들은 아무 말 안하고 멋쩍게 웃더니 “니혼진, 니혼진”을 연발했다. 그들은 일본인들이었다. “포또, 포또” 하면서 삼각대에 세운 사진기를 보여줬다. 한 달 후 그들의 '정체'를 주변에서 전해 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선조들이 식민지 조선에 남기고 간 주택들을 조사하고 기록하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왔다.

며칠 후면 광복 75주년 8월15일이 오고 한일병탄(1910년 8월29일) 110주년을 맞는다. 그때 일본 청년들은 그들의 카메라에 무엇을 담아갔을까. 아직도 일제강점기 36년은 저마다의 관념으로 기록해야 할 현재 진행형의 '시간'이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