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 행사 준비를 위해 들른 강화군 교동도에서 그동안 까맣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동도 바로 앞 한강하구가 정전협정 제1조5항에 '중립수역'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선지 여느 철책선과 달리 그곳에는 무장군인이 보이지 않았다.

더 놀라운 점은 우리 쪽에선 'ㄷ'자 철책에 둘러싸여 접근 불가한 강물에서, 북녘의 병사들과 어린아이들이 여름이면 미역을 감고 고기도 잡는 평화로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중립수역인 한강하구로 들어가려면 북은 자기 나라 군사령관(인민군)의 허락을 받으면 되지만, 남은 휴전된 지 67년이 지났음에도 남의 나라 군사령관(유엔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굴욕적인 현실도 체감했다.

정전협정 제4조 60항은 '3개월 내에 정치회담을 소집해 외국군대의 철수와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문제를 협의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1954년 4월 제네바에서 19개국이 모인 정치회담은 '외국군 철수' 문제 등으로 간단히 결렬됐다. 그 후 지금의 현실은 어떤가? 북에서는 1958년 당시까지 있었던 30만 중국 인민지원군이 완전 철수했지만, 남에는 2020년 오늘에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1950년 7월 전쟁 중에 이승만 대통령이 화급히 군 작전지휘권을 당시 맥아더 미 극동군사령관에게, 협정도 아닌 고작 '편지' 형식으로 넘겨줬던 것인데 여태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미국은 한반도에게 결코 '은인'이나 '우방'만은 아니었다. 1866년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1871년 신미양요도 우리 입장에서는 강자의 갑질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고,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다'는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동네 깡패들이 나와바리(구역) 나눠먹기와 다를 바 없었다. 1945년 9월 미군은 이 땅에 일본 제국주의 압제를 물리친 해방군이 아니라 일본 식민지였던 조선땅 '점령군'으로 들어왔다. 1949년 철수했지만 1950년 전쟁이 터지자 유엔군 모자를 쓰고 다시 들어왔다.

'공산주의로부터 우리를 지켜줬다'고는 하지만 그 이후 분단이 고착화되었다. 그동안 지불한 비용도 너무 크다. 매년 늘어가는 방위비분담금은 말할 것도 없고, 쓰레기 양키문화, 기지촌과 인근지역 강도•살인•폭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역대 군사•독재정권을 지원했으며, 광주학살을 방조했다. 핵무기를 우리도 모르게 넣다 뺐다 하는가 하면, 이젠 세균무기 실험실까지 남의 땅에서 자기들 멋대로 설치하는 행패를 부리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검은머리 미국인'이 대한민국을 좀먹고 있다.

세계 경제력 순위 13위, 세계 군사력 순위 6위로 올라선 대한민국이 미군 몇 명 나간다고 호들갑을 떨 이유는 더 이상 없다.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야 할 이유는 더 더욱 없다. 괜한 호구짓 해서 방위비분담금만 올려줄 빌미만 준다.

미군은 대한민국을 지켜주기 위해 주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을 위해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대 중국 포위전선 최일선에서 초병이자 총알받이 역할을 강요받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바로 그 증거다.

왜냐하면 미 본토로 발사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사드가 있는 성주에서는 발사 8초 후면 알 수 있지만, 알래스카에 있는 미군기지에서는 15분 후에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의 성격이 달라졌다. 따라서 이치적으로 보면 방위비분담금을 줄 게 아니라 미군에게 주둔비를 받아야 마땅한 상황이다. 미군이 대한민국을 지켜준다는 맹신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남북관계에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행태를 보나, 미국보다 중국이 배 이상 커진 무역 측면에서 보나, G7(주요 7개국 모임)에 초청될 정도로 높아진 국제적 위상으로 보나 이제는 한미동맹과 한일관계를 제대로 바로잡아야 할 때가 됐다. 광복 75주년이 우리에게 주는 과제다.

 

이성재 인천자주평화연대추진위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