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부동산대책으로 등장하여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더니 균형발전대책으로 변신했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수도이전을 위헌이라고 하자 정부는 행정복합도시를 추진하여 세종시를 건설하고 중앙부처를 대부분 이전했다. 추가로 청와대와 국회 등을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수도는 한 나라의 정체성의 상징이다. 국민통합과 자존감의 원천이다. 외국에 대해서는 나라의 얼굴이다. 수도를 헌법으로 규정한 나라가 많은 것은 그 만큼 수도가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미치는 영향이 중차대하기 때문이다. 한 도시가 수도로서 제대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지적, 인적,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이는 수백년의 장구한 세월과 막대한 자원과 인력이 있어야 비로소 형성될 수 있다. 수도는 허허벌판에 몇 년간의 대규모 토목공사로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도로서 인프라가 매우 취약한 세종시가 수도로서 기반을 갖추려면 주변지역과 영남과 호남, 인천과 경기, 강원, 제주지역의 자원과 인구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될 수밖에 없다. 세종시는 자체자원과 인력이 매우 빈약하기 때문이다. 세종시가 다른 지방의 자원과 인력을 빨아들여 수도로서 기반을 갖추는데 성공하면 국토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흡인력이 약하여 수도로서 기반을 갖추는데 실패하면 국가전체가 작동하지 않는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 토목적 천도가 갖는 태생적인 딜레마이다.

균형발전을 위한 수도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 지금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문제는 고도의 중앙집권적인 체제하에서 국가가 수도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문제는 물론 지역적인 문제까지도 모두 좌지우지해 왔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으로 수도의 역할이 커지고 전국의 자원과 인력이 집중된 것이다. 지방정부는 지역발전을 위해 나서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지역발전도 중앙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중앙집권체제를 그대로 두면 지방의 식민지화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수도를 이전해도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균형발전을 이루려면 중앙정부의 기능을 과감하게 지방정부로 이전해야 한다. 중앙정부 대신에 지방정부가 지역발전을 주도할 수 있도록 국가경영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오늘날 지식정보사회에서 중앙정부는 지역발전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정답을 모른다.

지역발전은 지방정부가 주민들과 함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혁신적 실험을 통해 달성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문제, 교육문제, 지역경제문제 등을 중앙정부는 해결할 능력이 없다. 지방마다 다양한 정책실험을 하면서 정답을 찾아내어야 한다. 즉 지방이 혁신의 실험실이 돼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도 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과감한 지방분권이 요구된다.

국방, 외교 등 전국적인 문제를 제외한 모든 기능은 행정과 사법은 물론이고 입법도 과감하게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전주는 전북의 수도가 되고 광주는 광주의 수도가 된다. 창원은 경남의 수도가 되고 인천도 인천의 수도가 된다. 전국에 16개의 지방수도가 생겨나게 된다. 지방수도는 지역발전의 중심이 된다. 기능적인 천도가 이루어진다.

지방수도가 지역발전의 중심이 되어 지역발전을 책임지게 되면 중앙정부의 역할은 축소된다. 중앙정부의 수도인 서울의 역할도 축소된다. 수도의 블랙홀 현상과 불균형문제도 줄어들 것이다. 지방분권으로 지역간 정책경쟁이 유발되고 혁신과 발전의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낙후지역도 선도지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고, 앞선 지역도 혁신을 게을리하면 낙후지역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지역간의 다양성과 차별성은 강화되고 전체적으로 지역발전과 국가발전은 촉진될 것이다. 지역적인 격차는 합리적인 재정조정으로 상당부분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적 전환기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수도를 옮기는 토목적인 천도가 아니라 중앙정부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지방분권이 필요하다. 개헌도 토목적 천도를 위한 개헌이 아니라 기능적 천도를 위한 지방분권적 개헌이 필요하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