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생존 사이 … 민심 헤아려야
▲ 달팽이(蝸) 각시가 몰래 음식을 차려놓으면 입이 비뚤어지게( ) 먹는다. / 그림=소헌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 좁은 욕조 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노래 ‘달팽이’는 그들에게 둘러쳐진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지친 모습을 표현했다. 느리고 무능한 달팽이.

요 며칠 지인들과 ‘집’ 이야기를 나누는데 누군가 ‘가정환경조사표’를 꺼냈다. 1970년대 초중학교 시절로 기억한다. 각자가 처한 환경란에 동그라미표를 그리는 방식이다. 부모님의 학력을 쓰는 것도 그랬지만 ‘자가/전세/월세’나 ‘승용차/TV/냉장고/세탁기/피아노/라디오’ 등에 표시를 하는데 꽤나 꺼림칙한 것이 아니었다. 없으면 창피하고, 있다고 하자니 죄스럽고.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 작성한 것을 보려면 잘 보여주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서 웬만한 녀석들에게는 ‘○’표가 거의 없을 것을 뻔히 알고 있는데도. “키득키득!”

와려도해(蝸廬渡海) 달팽이가 집을 짊어지고 바다를 건너다닌다는 4자속담이다. 달팽이가 바다를 건넌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함을 비유한다. 하물며 등에 무거운 집을 달았으니 오죽할까? ‘집’은 평범한 사람들의 성실한 노동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책임감을 상징한다. 또한 비록 작은집이라 해도 처녀총각들이 혼인할 수 있는 안식처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기도 하다.

 

와 [달팽이 / 소라 / 고둥]

①_(벌레 충)은 뱀이 똬리를 튼 모습이며 주로 파충류나 곤충을 뜻한다. ②_(입 비뚤어질 괘)는 _(뼈 발라낼 과)와 口(입 구)가 합쳐진 글자다. 통닭의 뼈를 발라먹는(_과) 모습에서 입(口)이 비뚤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_③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달팽이(蝸와) 모습을 마치 그렇게 느꼈었나 보다. ④한국민담에 등장하는 ‘달팽이 각시’는 _(여신 와)로 쓴다.

 

려 [오두막 / 농막 / 주막]

_①_(집 엄)은 마룻대가 있는 큰 집을 뜻한다. 지붕을 강조한 _(집 면)에 담벼락을 둘렀으니 집이 커진 모습이다. ②盧(밥그릇 로)에는 사연이 있다. 제 발로 기어들어온 호랑이(_호)를 잡아 밭(田전) 가운데 우리를 지어 잡아넣고 밥(皿그릇 명)을 먹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허술하게 만든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③어떠랴? 호랑이 처지에서 보면 오두막(廬로)도 큰집이 아니겠는가?

“나는 임차인입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국회연설을 한 야당의원이 많은 호응을 얻었다. 두 채 중에서 강남 집은 두고 지방에 있는 하나를 팔았다며 다른 다주택 의원들도 그렇게 하라고 말했다. 칭찬할 일이기는 하나 괴리감은 여전하다. 어떤 의원은 세입자보호에 무게를 둔 ‘임대차3법’이 통과된 후 “집값 올라서 화가 난다”고 했다. 오른(?) 세금이 걱정일까? 그는 주택 4채를 비롯하여 상가, 창고, 선착장, 토지 등 부동산을 통해 6년에 73억 원을 벌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_수개월 동안 아니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주택문제’로 이 나라를 시끄럽게 할까 뻔할 뻔 자다. 위정자들은 가장 좁고 보잘것없는 달팽이의 더듬이 위에서 서로 헐뜯고 경멸하며 _저들의 위선과 욕망의 땅을 세우려 한다(蝸角之爭 와각지쟁). 큰일이다. _그들은 바로 달팽이 집이라도 마련하려고 하는 대부분의 민중民衆을 담보로 삼기 때문이다.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