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에서 동인천으로 가는 급행열차였다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불콰한 중년은 기둥을 잡고 졸고 있고

짧은 치마 위에 조그만 핸드백을 올려둔 여자는 팔짱을 끼고 있고

우람한 체격의 남자는 다리를 쩍 벌리고 고개를 갸웃하고

동그란 뿔테 안경을 낀 똘망똘망한 소년은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고

지팡이를 한 손에 그러쥔 할아버지는 마스크를 썼다 벗었다 하고 있고

임산부석에 앉은 찢어진 청바지 소녀는 이어폰을 끼고 있고

 

여섯의 남이 여섯의 나로 보였다

 

그동안 살아줘서 고마워, 있어 줘서 그걸로 됐어

하마터면 일어나서 한 명 한 명 뽀뽀를 할 뻔했다

 

가슴이 벅차올라 울컥하는데 그들의 배경 뒤로

흰빛들이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눈물이 맺혔다

 

동인천역 광장, 화단 옆에 앉아 지나치는 수많은 나를 봤다

한 줄 한 줄, 차마 읽기도 전에 스치는 너라는 내가

바람으로 흩어지고 또다시 불어오고 있었다

 

▶ 어제와는 다른 삶이다.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냈던, 아니 조금은 지루했던 일상의 날들이 이렇게 그리웠던 적이 있을까. “그동안 살아줘서 고마워, 있어 줘서 그걸로 됐어”라는 구절이 이렇게 절절하게 다가올 수가 없다. 평소에는 냉소적으로 보였을 지도 모를 일상의 사람들이 다 다행으로 여겨지는 순간. 그 “여섯의 남이 여섯의 나”인 것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그 하나 그걸로 됐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 권경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