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코로나 사태보다는 덜하지만, 한때 인류를 나락으로 떨어트릴 것같이 위세를 떨쳤던 에이즈 문제가 잠잠하다. 이유가 궁금했다. 1981년 미국 질병관리본부(CDC)는 매우 희귀한 형태의 질환에 관한 보고서를 공개한다.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던 남성 5명에게서 폐포자충 폐렴이 관찰되었는데, 그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LA라는 대도시에 살고 있고, 동성애자라는 점이다. 이후 세계 모든 대륙에서 이 질병이 발생하자 모두 두려워했다. 1981년에만 270명의 환자가 발생해 121명이 사망했다.

이 질병이 동성애자뿐 아니라 약물중독자, 수혈 과정에서도 발생하자 미국 CDC는 1983년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라는 이름을 붙였다. 에이즈의 등장은 현대 의학과 생물학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1984년에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HIV)의 정체가 밝혀졌고, 1990년대 중반에는 치료약이 개발돼 에이즈로 인한 사망률이 급격히 낮아졌다. 단지 비싼 약값을 감당할 수 있는 지역에서만 사망률이 낮아졌고, 나머지 지역은 여전히 높다. 에이즈 감염자의 95%가 동구권과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에 집중돼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 선진국답게 에이즈 환자가 적다. 현재 한국 인구 10만명당 에이즈 환자는 0.3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에이즈는 '천형'으로 불리며 국민들을 전전긍긍케 했다. 에이즈가 수혈 과정에서 옮길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 사람들은 병원에서 주사맞는 것조차 꺼려했다. 하지만 의료기술의 통제 안에 놓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에이즈는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특이한 것은 에이즈 치료제가 코로나 환자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에이즈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칼레트라'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에게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인천의료원은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였던 중국인(35·여)에게 에이즈 치료제를 투약해 완치시켰고, 다른 병원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칼레트라는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과 태국 등에서도 코로나 환자에게 투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며칠 전 코로나바이러스의 복제능력 등을 무력화시키는 새로운 항체가 확인됐다. 에이즈 치료제 개발을 이끈 '데이비드' 미국 에이즈 연구소장이 주도한 연구 결과다. 에이즈와 코로나는 적지 않은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코로나도 에이즈와 같이 어느 순간 뚝 끊겨, 코로나가 지속적으로 발생해 생활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무색하게 만들었으면 한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