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인천의 스타, 사이다'

 

대학 시절 농촌 봉사를 떠나기 며칠 전 단합을 위해 자유공원 인근 송월초등학교의 운동장을 빌려 체육대회를 열었다. 준비해온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미처 병따개를 준비하지 못해 남학생들이 숟가락 등을 이용해 음료수를 따서 마셨다.

그때 여학생 H가 사이다를 마시고 싶다고 했다. 평소 H를 마음에 두고 있던 남학생 J가 나섰다. “내가 따줄게.” 그는 병뚜껑을 어금니로 따려고 힘을 썼다. 순간 '대형' 사고가 터졌다. 병이 미끄러지며 입술이 찢겨 나갔다. 선혈이 낭자했다.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동인천 쪽 병원으로 가서 봉합수술을 받았다. J의 입술 주변에 길게 패인 흉터가 생겼다. 이후 친구들은 H에게 “이제 J는 장가가긴 글렀다. 네가 책임져야 한다”고 농담을 던지곤 했다.

지난주부터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인천의 스타, 사이다'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 1960~70년대 고(故) 서영춘이 불렀던 랩 스타일 유행가의 한 소절이다. 왜 하필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올랐을까. 왜 '사이다' 하면 별 모양의 로고가 떠오를까. 인천과 사이다, 사이다와 별 사이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 수 있다.

H와 J의 결말은 어찌 되었을까. J는 흉터 생긴 얼굴로 다른 여성과 결혼해 잘 살고 있다. H는 대학 졸업 후 박사 학위를 취득해 지방 대학 교수로 근무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60세 넘어 독신으로 살고 있다. “책임져라”는 말 때문에 H가 결혼하지 않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음료수 병뚜껑을 딸 때마다 H와 J가 생각난다. 어느덧 친구들 모두 사이다의 흰 거품 같은 백발을 얹고 사는 나이가 됐다. 계속되는 무더위와 코로나19의 답답한 상황에 지친 우리에게 가슴을 뻥 뚫어줄 '사이다'의 추억이 그리운 때이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