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는 우리들 일상부터 흔들어 놓았다. 산책이 이제 생활문화로 자리잡은 것도 큰 변화다. 아침에도 걷고 저녁에도 걷는다. 이쪽 길에서 만났던 이웃 주민을 저쪽 길에서 다시 만나기도 한다. 어제 만났던 강아지를 오늘 또 만나기도 한다. 하기는 산책 중에 사람보다는 강아지를 더 많이 만나는 시대다. 이러다 모두가 매일 정시 산책으로 유명했던 칸트나 베토벤이 될지도 모르겠다.

▶느린 걸음의 산책길에는 숱한 꽃들이 피고 지곤 한다. 그간에는 스쳐 지나갔던 동네 풍경도 새삼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다소 섬뜩한 풍경과도 마주친다. 바로 폐업한 식당의 자취들이다. 10년 넘도록 한 자리를 지켜 '장하다' 여겼던 치맥집도 어느 순간 불이 꺼졌다. 출입문에 '가게 임대' 안내만 남긴 채. 가끔 길에서 만나면 눈 인사라도 나누던 젊은 사장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인테리어도, 집기도 철거된 가게 안은 먼지가 자욱하다. 따스한 불빛 아래 가족단위 손님들이 특히 많던 스시&롤 집도 어느 새 불이 꺼졌다. 얼핏 봐도 한 집 건너 한 집 꼴이다. 식당 뿐만 아니다. 불과 몇 달 새 동네 중소형 마트 2곳도 문을 닫았다. 마트 한 곳의 마지막 영업 날, “어디 다른 데로 옮기느냐”고 물어봤다. 곧 울음이 터질 듯한 사장님은 평소와는 달리 대꾸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얼마 전 인천일보 사회면에 '하나 둘 사라지는 식당…'이라는 기사가 떴다.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인천 차이나타운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인근 상권에서는 휴업에 들어간 가게도 하나 둘 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인천 서구의 한 식당에서는 경영난을 겪던 50대 주인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손님이 계속 줄어들자 이 식당은 7월 초부터 장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거 잘 나가던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가맹점 사업을 속속 접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이 가파르던 3월에 비해서는 분위기가 나아졌지만 누적된 비용 부담을 끝내 이기지 못해서다. 올들어서만 82개 프랜차이즈가 가맹사업을 접거나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니까 사장이다' 등의 자영업 커뮤니티 등에서는 '가게 철거 비용이 무서워 폐업도 못한다'는 사연도 올라온다. 반면 철거업체들은 작년보다 2∼3배나 일거리가 늘어나 '씁쓸한 호황'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식당 하나를 철거하고 난 날 철거업체 직원이 올린 글도 있다. “이 식당 간판을 달면서 설렜을 사장 마음을 생각하니…” 코로나19는 참으로 고약한 것 같다. 악마는 늘 맨 뒤에 쳐져있는 이를 먼저 덮친다고 했던가. 가슴 저미는 감염병 시대의 엘레지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