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

순한 것들은 돌돌 말려 죽어간다

죽을 때가 가까우면 순하게 돌돌 말린다

고개 숙이는 것 조아리는 것 무릎 꿇는 것

엊그제 떨어진 잎이 돌돌 말렸다

저 건너 건너 밭고랑

호미를 놓친 노인 돌돌 말렸다

오래전부터 돌돌 말려가고 있었다

돌돌 말린 등으로

수레가 구르듯 세 고랑을 맸다

날 때부터 구부러져 있었던 호미를 들고

호미처럼 구부러지며

고랑 끝까지 왔다

고랑에 돌돌 말려

고랑 끝에 다다른 노인 곁에

몸을 둥글게 만 잎들이 모여들었다

돌돌 저 먼 데서부터 몸을 말며

여기까지 왔다

 

*한 사람의 삶의 괘적을 이토록 가볍고 경쾌하게 처리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대체로 연륜으로 걸어온 한 사람의 삶의 과정이란 무겁고 엄숙한 법이다. 세상에 순한 것들은 돌돌 말려서 죽어가고 돌돌 말려서 밭고랑 끝까지 굴러 온 잎들과 노인의 삶을 결부시킨 화자의 시선은 탁월하다. 이토록 죽음을 가볍게 들어 올리는 일은 인식의 새로움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평소 화자가 사물에 대한 관찰의 새로움에 얼마나 깊이 천착하고 있는가를 알겠다.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변한다는 것이다. 죽음을 바라보는 눈도 마찬가지다.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는 죽음이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건강하게 천수를 누리다 가는 죽음들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돌돌 말린 노인의 삶이 슬프지 않은 것은 노인도, 떨어진 잎도,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도 이미 천수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