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에서 '노인'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용어 중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선배시민으로 번역되는 이 용어는 '시니어'와 '시티즌' 즉 '선배'와 '시민' 이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이다. 선배는 '같은 분야에서 지위나 나이, 학식 따위가 자기보다 많거나 앞선 사람'을, 시민은 '국가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나라 헌법에 의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자유민'을 뜻한다.

그렇다면 선배시민은 어떤 사람일까? '선배'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를 가르치고 바른 길로 이끌어주며, 때로는 아직 미숙한 후배의 잘못을 감싸주고 어려움을 상담하거나 조언하기도 한다. 따라서 노인이 우리 사회의 선배라는 의미는 후배인 젊은 세대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젊은 세대의 실수나 잘못을 감싸주며 인생고민이나 어려움을 상담하고 조언하는 것이 노인의 역할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시민'은 민주사회의 구성원이자 권력의 주인이며, 사회에서 규정한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가진 존재이다. 고대 계급사회에서는 특정 계급이나 가문에게 권력이 집중되었지만 근대 시민혁명 이후에는 모든 사회구성원 즉 시민들에게 권력이 있다. 시민은 과거 봉건사회에서 군주에게 충성하는 신하로서의 신민과는 달리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존재인 것이다. 시민은 자유를 누릴 권리와 동시에 사회에 대해 책임을 지닌 그 사회의 주인이다. 즉 민주시민사회의 주인은 시민이며, 노인은 사회의 주인인 시민 중에서도 나이뿐 아니라 인생경험과 지혜가 많은 선배인 것이다.

노인을 사회를 먼저 경험한 선배로 바라보는 관점은 젊은이와 노인을 사회라는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순환적이고 연대적인 관계로서 이해한다. 세대순환 및 세대연대의 관점은 세대를 대결관계로 보기보다는 협력관계로 보며, 세대간 갈등보다는 새대공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재의 후배는 미래 언젠가에는 선배로 성장하게 되며, 그들 역시 선배의 자리에서 새로운 후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세대는 순환하는 것이고, 따라서 세대 간의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다.

최근 노인복지 현장에서는 현대사회에서 위축된 노인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하여 선배시민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선배시민교육은 질병, 가난, 외로움, 역할상실로 대표되는 노년의 네 가지 고통 즉 4고(四苦)의 노인상에서 탈피하여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젊었을 때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노인상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이다.

선배시민교육을 통하여 선배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무엇일까?

첫째, 사회의 주인의식과 그로부터 비롯된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사회참여가 필요하다. 하룻밤 묵어가는 모텔 벽에 금이 갔다고 해서 나서서 벽을 보수하는 손님은 없겠지만, 내 집의 벽에 문제가 생겼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히 먼저 나서서 수리를 하려 들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선배시민은 사회의 주인으로서 자신들이 주도했던 지금까지의 사회는 물론이고 앞으로 후배시민들이 물려받아 이어가게 될 사회 역시 성공적으로 잘 운영되도록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둘째, 후배시민에 대한 교육과 전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선배시민인 노인은 과거의 사회와 현재의 사회를 잇는 주인이며, 후배시민인 젊은이는 현재의 사회와 미래의 사회를 잇는 주인이다.

선배시민은 후배시민에게 사회의 주도권을 안전하게 넘겨줄 책임이 있다. 자녀가 장성하면 부모가 자녀에게 가업과 집안을 다스릴 책임을 물려주는 것처럼, 후배가 성장하면 선배 역시 자신의 일과 책임을 물려주는 것이 당연하다. 선배시민은 사회에 대한 책임을 후배들에게 인계함에 있어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얻은 성공은 물론이고 실패에 대한 반성까지 잘 정리하여 전수해주어야 한다.

선후배 간의 인수인계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그 사회가 잘 유지되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셋째, 후배시민을 지지하고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헌신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선배들의 시대는 지나가고 후배들의 시대가 도래했다. 선배들의 머리 위에서 빛났던 왕관은 이제 후배들의 머리로 옮겨졌다. 이제 남은 것은 이전에 선배들이 그랬듯이, 후배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지지와 격려를 보내고 뒤에서 묵묵히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이다.

 

 

한정란 한서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