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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달 14일은 '택배 없는 날'이다. CJ대한통운, 한진, 롯데, 로젠 등의 택배회사가 가입된 한국통합물류협회가 정한 '택배 없는 날'은 사상 최초이자, 택배업이 시작된 지 28년 만의 일이다. 택배노동자는 코로나 국면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했다.

대부분 분야의 업무가 위축되었지만 택배기사는 작업물량이 평소보다 30~40% 늘었다. 시민들이 바이러스 공포로 외출을 자제하는 동안 이들은 쉼없이 배송업무를 진행해, 고객들은 원하는 물건을 집에서 편하게 받을 수 있었다. '택배기사가 없었다면'이라는 가정은 끔찍할 정도로 기사들은 코로나 사태를 온몸으로 받아냈다.

그 와중에 3명의 기사가 과로로 사망했다. 코로나에 가장 지쳐 있는 사람이 택배기사라는 말이 나온다. 의료진과 함께 코로나 극복의 주역으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버거울 뿐이다. 택배기사들이 잠시 쉬는 것을 두고 '재충전의 시간' 운운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처음으로 노동자 대접받았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들은 주당 78~90시간을 일한다. 근로기준법상 법정 노동시간인 주 52시간을 훨씬 초과한지만 택배노동자는 물류회사 직원이 아닌, 회사와 계약한 개인 사업자이기에 근로시간을 초과해도 문제가 안된다. 한국교통연구원이 밝힌 택배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2.7시간, 월 평균 근무일은 25.6일이다 유통업체 매출 가운데 택배 유통이 40% 정도를 차지하는데, 아직 공식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는 이보다 훨씬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온라인 조사 결과 '현 시기에 택배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면 생활이 굉장히 불편할 것 같다'고 답한 사람이 82.2%로 나타나 택배는 이제 생활에서 필수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일본•미국•유럽과 같은 사재기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신속하고 정확한 택배시스템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럼에도 택배기사를 난감케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와 인천 송도국제도시 아파트단지에서 아동안전 등의 이유로 택배차량 진입을 금지시키자 기사들은 별수없이 아파트단지 정문 인근에 택배물품을 쌓아뒀고, 주민들은 물건을 직접 찾아가야만 했다. 이후 택배차량 출입을 제한적으로 허용해 갈등은 해소됐지만, 언제든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택배기사 아내의 글을 인용한다. “괄시당하고 말도 안되는 요구를 들어주는 남편의 모습을 보기 힘듭니다. 너무 몰아가지는 말아주세요. 누군가의 남편, 아빠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