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비추는 '미디어'의 윤회
▲ 영화 '엉클 분미' 중 정글 속을 떠도는 붉은 눈의 원숭이 귀신.

 

“저 그림자는 환영일 뿐이야. 환영이겠지?”

폭포 앞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로 바뀐 자신의 물그림자를 넋을 놓고 바라보던 공주는 이내 푸념한다. 못생긴 외모 때문에 실의에 빠진 공주는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 몸에 걸친 장신구들을 물의 주인에게 건네며 자신을 그 그림자처럼 아름답게 바꿔달라고 부탁한다. 그녀의 이 같은 욕망은 TV라는 미디어를 낳는다.

태국 영화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은 미디어와 윤회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 영화 '엉클 분미'(2010)로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이 영화는 죽음을 앞두고 가족들과 함께 정글을 지나 언덕 위 신비로운 동굴을 향해 떠나는 분미의 생의 마지막 여정을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그려낸 마술 같은 영화이다.

'카르마'에 의한 인간과 미디어의 윤회

정글 소리가 환상적으로 들리면서 “정글과 언덕, 계곡 앞에 서면 짐승이나 다른 존재였던 내 전생이 떠오른다”는 오프닝 자막이 뜬다. 이어 줄에 매인 황소 한 마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줄을 끊고 정글 속으로 달아난다. 그러나 풀을 뜯어 먹는 데 정신이 팔려 결국 주인에게 다시 끌려가고 저만치서 붉은 눈의 검은 형체가 이를 지켜본다. 오프닝 장면은 카르마의 법칙에 의하여 모든 중생들이 끊임없이 부침하는 윤회의 사슬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감독은 불교와 힌두교의 윤회사상을 영화 속에 투영하여 인간과 인간의 확장인 미디어 사이에 흐르는 카르마의 법칙을 통해 미디어의 기원과 발달과정을 그렸다. 인간이 카르마(karma, 업)에 의해 생을 거듭하며 윤회하듯이, 인간의 욕망을 비추는 미디어도 이종교배를 통해 거듭 새로 태어나며 윤회한다. 사진세대를 대표하는 분미는 죽은 아내의 유령과 붉은 눈의 원숭이 귀신이 된 아들 분쏭과 재회한다. 사진술에 몰두한 분쏭과 원숭이 귀신의 짝짓기는 '황소'의 움직임을 그린 선사시대 동굴벽화에 착안하여 탄생한 영화의 기원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야기 속 이야기로 불쑥 등장한 못생긴 공주와 메기의 짝짓기 우화는 이들이 일으키는 물의 파동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며 TV의 탄생을 예고한다. 이 영화는 사진, 영화, TV 등으로 이어지는 미디어의 역사를 통해 그것이 반영하는 인간의 역사를 조명한다. 신분, 성별, 인종, 국가, 이념, 빈부 등 각종 분별로 경계 지어진 세상 속에서 인간들은 끊임없이 업을 지으며 윤회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인간의 확장인 미디어도 인간과 함께 이 윤회의 사슬에 묶여 있다. 이 물질세계가 환영임을 깨달음으로써 인간의 업이 완전 소멸되기 전까지 말이다. 생이 시작된 동굴에서 분미는 꿈을 통해 모든 분별이 사라지며 해탈하는 자신의 내생을 본다. 한편 동굴 밖 세상으로 나아가 어렴풋이 진실을 발견한 청년 통은 승려가 되지만 욕망으로 가득한 물질세계 속에서 순간순간 오염되어 끊임없이 환영을 재생산하는 TV 앞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디어 아티스트이기도 한 감독은 '지구촌' 세상을 연 인간의 '뇌'의 확장인 컴퓨터라는 미디어의 명암을 젠과 통의 유체이탈 장면을 통해 드러내며 미디어아트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고대 인도 문헌 〈샤타파타 브라흐마나〉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일깨우면서 말이다. “사람은 자신이 만든 세계에 태어난다.”

/시희(SIHI) 베이징필름아카데미 영화연출 전공 석사 졸업·영화에세이스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