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전북의 한 도시에서 시의원 1명이 제명됐다. 1991년 지방의회 부활 이후 첫 제명이라고 한다. 여성의원 한명도 곧 제명될 거란다. 남녀 의원간의 불륜 파동이 불러온 파국이다.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는 지난해 말 해외연수때 시작됐다고 한다. 좁은 바닥인지라 그간 소문만 무성했다. 지역유지들이 모두 모인 지난 달 현충일 행사에서 처음 사실로 드러났다. 연인 사이에서 원수로 뒤바뀐 당사자들은 본회의장에서도 충돌했다. “내가 스토커야, 어디 이야기 해봐” “그럼 제가 꽃뱀입니까” '낯부끄러워서 타지 나들이도 못할 판'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지방의원들의 일탈이야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주민 세금으로 호화판 해외 나들이를 다니는 것은 이제 애교 수준이다. 개발 정보를 선점해 이득을 취하거나 이권에 개입하는 쯤도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위의 두 남녀 의원들은 스캔들이 막장에 이르러서도 사퇴는 한사코 미뤘다. 알고보니 시의회 의장 선거때문이었다. 윤리특위에서 제명이 결정나도 본회의에서 최종 처리돼야 뱃지를 떼게 된다. 여론의 질타에도 불구, 이 곳 시의회는 내정된 의장단 선출에 차질을 줄까 봐 처리를 최대한 늦춘 것이었다.

▶전국의 지방의회들이 민선7기 후반기 '의장 감투' 싸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 여파로 집권 여당의 지역당들에서는 연일 소속 의원들을 제명하느라 바쁘다. 의장단 선거 과정에서 내정되지 않은 의원을 찍은 '해당 행위' 문책이다. 가장 많은 지방의회를 거느린 경기도는 더 바쁘다. 지난주에도 선거를 통해 뽑힌 포천, 광명, 동두천, 연천군 등의 의회 의장을 당에서 제명했다.

차기 의장을 내정한 의원총회 결과에 불복한 의원들이 야당이나 무소속 의원들과 짜고 선거판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의장, 상임위원장 등의 감투가 거래되기도 한다. 반대로 야당이 다수를 차지한 부산 같은 데서는 통합당이 징계 방망이를 두드려 대고 있다. 혈세로 외유나 다니던 지방의원들이 이제 합종연횡(合從連衡)이라는 고도의 정치 내공까지 습득한 것이다.

▶이런 합종연횡을 깨기 위한 신무기도 등장했으니, '짬짜미 기명투표'라 했다. 경기 안양의 시민단체들은 최근 안양시의원 12명을 위계에 의한 공무방해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의장단 선거에서의 배신행위를 막기 위해 누가 어느 후보를 찍었는지 알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었다. 투표용지에 후보 이름을 적는 위치를 '좌측 상단' '우측 하단' 식으로 의원마다 지정해 줬다. 이같은 적나라한 논의 과정이 담긴 의원총회 녹취록까지 나돌았다고 한다. 합종연횡에 짬짜미 기명투표까지, 지방에 썩히기 아까운 사람들 아닌가.

 

정기환 논설실장